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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어 사전급진사회당

에두아르 달라디에

Édouard Daladier

인민전선을 함께 세우고 제 손으로 청산한 급진당의 「보클뤼즈의 황소」

「저 바보들 같으니, 저들이 무엇에 환호하는지 안다면」, 1938년 9월 30일 뮌헨 협정에서 돌아와 부르제 공항의 환호 인파를 보고 했다고 전해지는 말. 인용 여부와 장소·상대를 두고 증언이 엇갈린다.

빵집 아들 출신 역사 교사로 급진당을 이끌었다. 1934년 2월 6일 폭동 뒤 총리직에서 물러났고, 1936년 6월부터 국방을 맡아 인민전선을 지탱했으나 1938년 4월 총리로 복귀한 뒤 11월 법령으로 주 40시간제를 폐기하고 총파업을 꺾었다. 1938년 9월 뮌헨 협정에 서명했고, 1939년 9월 3일 독일에 선전포고했으며 독소 불가침조약 뒤 공산당을 불법화했다. 1940년 3월 핀란드 지원 실기로 실각해 리옴 재판에 섰고 1943년부터 부헨발트 인근과 이터성에 억류되었다가 1945년 5월 5일 풀려났다. 전후 하원에 복귀해 1958년 드골의 전권에 반대했고 1970년 10월 10일 파리에서 사망했다.

상세 이력 보기
  • 1884–1914카르팡트라 빵집 아들, 역사 교사
  • 1914–19181차 대전 참전, 사병에서 중위까지
  • 1919–1933급진당 하원의원, 당의 지도자로 부상
  • 1934.01–02총리, 2월 6일 폭동 이튿날 사임
  • 1936–1940국방장관, 1938년부터는 총리 겸임
  • 1938.04–09총리 복귀, 뮌헨 협정 서명
  • 1938.11법령으로 40시간제 해체, 총파업 진압으로 인민전선 청산
  • 1939.09대독 선전포고, 독소 불가침조약 뒤 공산당 불법화
  • 1940.03핀란드 지원 실기의 책임으로 실각
  • 1940–1945리옴 재판 피고, 부헨발트 인근과 이터성에 억류
  • 1946–1958하원 복귀, 급진당 원로
  • 1970.10파리에서 사망

뱅상 앙리 바디

Vincent Badie

공화국을 지키려 한 급진사회주의자

“공화국 만세, 그래도!”

뱅상 바디는 변호사 출신의 프랑스 급진사회주의 정치인으로, 지방 행정과 의회에서 활동하며 참전군인과 공화국의 권리를 옹호했다. 1940년 7월 그는 헌법 개정 자체에는 열려 있었지만 페탱에게 권력을 넘겨 공화국을 없애는 데는 반대했고, 이를 밝힌 27인 동의안의 발의를 시도한 뒤 전권 부여에 반대표를 던졌다. 비시 당국의 시장직 정지 뒤 레지스탕스에 참여했으며 체포되어 다하우로 deport되었다. 전후에는 다시 의원과 참전군인 담당 장관을 지냈지만 식민 지배와 프랑스의 해외 주둔을 옹호하는 한계도 보였다.

상세 이력 보기
  • 1923몽펠리에 변호사단 변호사
  • 1931–1938에로주 몽펠리에·지냐크 선거구 도의원
  • 1936–1942에로주 하원의원
  • 1938–1941폴랑 시장
  • 1944–1971폴랑 시장
  • 1945임시 자문회의 의원
  • 1946–1958제4공화국 국민의회 의원
  • 1955–1956참전군인·전쟁 피해자 담당 장관
  • 1958참전군인·전쟁 피해자 담당 장관
  • 1957–1958급진사회주의 의원단 의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