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6년(1870년 설도 있다) 세미팔라틴스크주에서 태어나 옴스크 기술학교와 상트페테르부르크 임업대학을 마쳤고, 아바이 쿠난바예프의 첫 전기를 썼다. 1905년 입헌민주당(카데트)에 들어가 1906년 국가 두마 의원이 되었고, 비보르크 호소문에 서명해 투옥된 뒤 1917년까지 사마라에서 유형 생활을 했다. 1917년 임시정부의 투르가이주 위원이 되었으나 카자흐 자치 문제로 카데트와 갈라서 알라시 당을 세웠고, 그해 알라시 오르다 정부 의장으로 뽑혔다. 1919년 말까지 시베리아의 백군 정부들 편에 섰다가 소비에트 권력과 타협했고, 모스크바에서 출판 일을 하다 1937년 총살되었다. 1989년 복권되었다.
소련은 마치 무와 같다. 겉은 붉지만 속은 희다 — 『세대 교체』와 후속 저작에서 반복한 통찰.
페테르부르크 출신 법학자이자 카데트당원. 1913년 모스크바대학을 졸업한 후 내전기 콜차크 정부 언론국장으로 백군에 참여했다. 패배 후 하얼빈 망명길에 올라 『세대 교체』(1921)를 발표, 볼셰비키만이 러시아 국가를 회복할 수 있다고 주장하며 스메노베호프스트보를 창시했다. 네프 시기 소련을 '겉은 붉고 속은 흰 무'라 평했고, 그의 사상은 1925년 제14차 당대회에서 스탈린과 지노비예프의 논쟁 대상이 되었다. 1935년 귀국해 모스크바교통공학원 교수로 일했고, 1937년 6월 체포되어 9월 14일 총살당했다.
상세 이력 보기
1913–1916모스크바대학 법학부 졸업(1급), 동 대학 사립강사; 카데트당 입당
1917–1918페름대학 정교수, 법학부에서 국가법·법철학 강의
1919–1920콜차크 정부 언론국장; 내전기 백군 이념전선 담당
1920–1935하얼빈 망명, 법학부 교수 겸 КВЖД 고문; 『Окно』 창간, 『세대 교체』(1921)로 스메노베호프스트보 창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