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사전

용어 사전입헌민주당

세르게이 안드레예비치 무롬체프

Сергей Андреевич Муромцев
입헌민주당 제정·백색진영 러시아 러시아 1850–1910 ○ 심장마비

러시아 최초의 헌법적 의회를 이끈 로마법 학자이자 카데트 지도자

1906년 4월 27일 첫 국가두마 개회사: "국가두마에 경의를 표합니다. 위대한 사업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인민의 의지가 불변의 법에 기초한 입법 기관으로 표현됩니다."

로마법 학자이자 카데트 창립 지도자였던 세르게이 무롬체프는 러시아 헌정주의의 얼굴이었다. 모스크바 대학 교수로 법사회학을 개척했고, 법률학회 회장으로 사법 개혁을 주도했다. 1906년 제1대 국가두마 의장에 당선되어(426/436표) 러시아 최초의 입헌적 대의기관을 이끌었으나, 의회 해산 후 비보르크 호소에 서명해 수감되었다. 1910년 그의 장례식은 1905년 혁명 이후 최대 규모의 반체제 시위로, 헌정사에 신화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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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875모스크바 대학 로마법 도첸트
  • 1877법학 박사, 모스크바 대학 교수
  • 1880–1892《법률 회보》 편집자, 모스크바 법률학회 회장
  • 1905.10입헌민주당(카데트) 공동 창립, 중앙위원
  • 1906.04–07제1대 국가두마 의장
  • 1908비보르크 호소 서명으로 3개월 수감
  • 1910사망; 장례식이 대규모 반체제 시위로

표도르 이즈마일로비치 로디체프

Фёдор Измайлович Родичев

「스톨리핀의 넥타이」라는 말로 교수대를 고발한 카데트의 두마 연사

푸리슈케비치 씨가 무라비요프의 목걸이라 부르는 그것을, 그의 후손들은 아마도 스톨리핀의 넥타이라 부르게 될 것입니다…

트베리 지방의 진보적 젬스트보 활동가로 출발해 입헌민주당(카데트) 창당에 참여했고 4회 연속 국가두마 의원을 지낸 러시아 자유주의 정치인이다. 두마 최고의 연설가 중 하나로 불렸으며, 1907년 11월 17일 연단에서 스톨리핀의 야전군법회의를 비판하며 「스톨리핀의 넥타이」라는 말을 남겨 격분한 총리의 결투 신청을 받고 사과해야 했다. 1917년 2월 혁명 후 임시정부의 핀란드 담당 위원을 지냈고 10월 혁명에 반대하여 백군 진영에 가담했으며, 패배 후 망명하여 스위스 로잔에서 생을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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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876세르비아-튀르크 전쟁 의용군 참전
  • 1877–1895트베리 현 젬스트보 활동가, 베세곤스크 현 귀족 대표(1879–1891)
  • 1898–1904페테르부르크 변호사, 학생 시위 항의 서명으로 추방
  • 1904–1905젬스트보 대회·연회 캠페인 공동 조직, 입헌민주당(카데트) 창당 참여
  • 1906–1917제1~4차 국가두마 카데트 의원, 중앙위원
  • 1917.03–05임시정부 핀란드 담당 위원
  • 1918–1920백군 진영 참여, 세르비아·폴란드 파견 대표
  • 1920–1933망명: 파리, 이후 로잔에서 여생

파벨 밀류코프

Павел Милюков
입헌민주당 제정·백색진영 소련 러시아 1859–1943 ○ 자연사

입헌민주당(카데트)의 지도자: '어리석음인가 반역인가'

1916년 11월 두마 연단에서 그는 정부의 실패를 하나하나 열거한 뒤 매번 같은 후렴구를 던졌고, 의원들은 "반역이다!"라고 외쳐 답했다.

입헌민주당(카데트) 지도자이자 역사가. 1916년 '어리석음인가 반역인가' 연설로 차르 체제를 뒤흔들었고, 외무장관 시절 4월 위기를 촉발했다. 망명 후 파리에서 신문을 발행했으며, 대독소전 때 소련 편에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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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05입헌민주당(카데트) 창당
  • 1906비보르크 선언 기초 — 의회 해산에 대한 저항 촉구
  • 1907–1917제3·4대 두마 의원, 카데트 원내대표
  • 1915진보블록(Progressive Bloc) 결성 주도
  • 1916.11'어리석음인가 반역인가' 연설 — 슈튀르메르 정부 맹비판
  • 1917.03–05임시정부 외무장관 — 밀류코프 비망록으로 4월 위기 촉발 후 사임
  • 1917.08코르닐로프 사건 — 케렌스키·코르닐로프 대립 속 혼란 가중
  • 1920–1940파리에서 망명 신문 『최신소식』 발행
  • 1941–1943나치 독일과의 전쟁에서 소련 지지 — 스탈린그라드 승리에 기뻐함

게오르기 예브게니예비치 리보프

Георгий Евгеньевич Львов

류리크 왕조의 후예, 제국의 마지막 자유주의 총리

"정부는 권위 없는 권력이고, 소비에트는 권력 없는 권위다." — 임시정부 총리로서 리보프는 자신이 이끄는 정부와 페트로그라드 소비에트 사이의 이중권력 현실을 이 한 문장으로 요약했다.

게오르기 리보프 공작은 류리크 왕조의 후예로, 제국 말기 젬스트보 자유주의 운동의 상징적 지도자였다. 러일전쟁 시기 의료여단을 이끌어 전국적 명성을 얻었고, 제1차 세계대전 중에는 전러시아 젬스트보 연합과 젬고르를 이끌며 군수·의료 지원을 조직했다. 1917년 2월 혁명 후 임시정부 초대 총리 겸 내무장관에 취임하여 보통선거·언론의 자유·사형 폐지·종교·계급·인종 차별 철폐 등 자유주의 개혁을 단행했으나, 소비에트와의 이중권력 속에서 실질적 권위를 확보하지 못하고 7월에 사임했다. 알렉산드르 케렌스키에게 정권을 넘긴 후, 10월 혁명으로 체포되었다 탈출하여 미국을 거쳐 프랑스로 망명, 파리에서 가난하게 회고록을 쓰다 1925년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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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891–1893툴라 현 젬스트보, 기근 구호 활동
  • 1900–1906툴라 현 젬스트보 행정위원회 의장
  • 1904–1905러일전쟁: 젬스트보 의료여단 조직·지휘, 전국적 영웅
  • 1906제1대 국가두마 의원(카데트), 의료·식량위원회 위원장
  • 1914–1917전러시아 젬스트보 연합 의장, 육군 의료·보급망
  • 1915–1917젬고르 공동위원회 지도자, 전시 군수·구호 총괄
  • 1917.03–07임시정부 총리 겸 내무장관: 보통선거·사형폐지 등 개혁
  • 1918–1925체포·탈출, 미국 거쳐 파리 망명, 회고록 집필

니콜라이 미하일로비치 키시킨

Николай Михайлович Кишкин

10월 혁명 당일 페트로그라드의 마지막 전권자로 임명된 카데트 장관

10월 25일 오후 4시, 각료회의는 키시킨에게 수도 전역의 군·민 기관을 지휘할 전권을 부여했다. 그는 즉시 폴콥니코프 대령을 "무활동"으로 해임하고 바그라투니 장군을 페트로그라드 군관구 사령관에 임명했다.

모스크바 출신 의사에서 카데트 좌파의 중앙위원이 된 정치인으로, 1차 세계대전 중 전러시아 도시연합의 부총책임자로 활동했다. 1917년 2월 혁명 후 모스크바 임시정부 코미사르를 거쳐 9월 마지막 내각의 사회복지 장관으로 입각했다. 10월 25일 오후 페트로그라드 치안 회복의 특별 전권을 부여받아 폴콥니코프를 해임하고 바그라투니를 군관구 사령관에 임명했으나, 그날 밤 안토노프-옵세옌코에게 겨울궁전에서 체포되었다. 내전 후 의사로 복귀했고 1921년 프로코포비치·쿠스코바와 함께 전러시아 기근 구제 위원회를 조직했으나, 체포와 유배를 거듭하다 1930년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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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05–1917.02카데트당 중앙위원, 모스크바 시두마 의원, 전러시아 도시연합 부총책임자
  • 1917.03–09모스크바 임시정부 코미사르
  • 1917.09–10임시정부 사회복지 장관
  • 1917.10.25페트로그라드 질서 회복 특별 전권자, 폴콥니코프 해임·바그라투니 임명, 겨울궁전에서 체포
  • 1918–1921석방 후 의사 복귀, 1919년 '전술중앙' 사건으로 체포·석방
  • 1921–1923전러시아 기근 구제 위원회(포모골) 공동 조직, 체포·볼로그다 유배 후 사면
  • 1923–1930보건인민위원부 요양부서 근무, 연금·식량 배급 박탈, 1930년 모스크바에서 사망

표트르 베른가르도비치 스트루베

Пётр Бернгардович Струве

마르크스주의에서 자유주의를 거쳐 반볼셰비키 보수로: 러시아 지식인의 궤적을 그린 사상가

바실리 슐긴이 회고한 장면: 「그러면 자신도 진압되어야 했나?」 묻자, 스트루베는 흰 수염을 떨며 자리에서 일어나 외쳤다 — 「그렇소! 나부터! 혁명가가 머리를 들면 — 탁! — 개머리판으로 두개골을!」

합법적 마르크스주의로 출발해 해방동맹 공동 창립과 『이정표』(1909) 참여를 거쳐 백군 이념가로 귀결된 사상가. RSDLP 첫 선언문(1898)을 썼고, 망명 중에도 반볼셰비키 저술을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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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894『러시아 경제발전 비판』 출간, 합법적 마르크스주의 기수로 부상
  • 1898제1차 RSDLP 대회 선언문 기초
  • 1902–1905『해방』지 편집, 해방동맹 공동 창립
  • 1905–1915카데트 중앙위원, 『이정표』(1909) 참여
  • 1907제2국가두마 의원(페테르부르크)
  • 1917러시아과학원 정회원, 임시정부 외무부 경제국장
  • 1918–1920백군 이념가, 데니킨·브란겔 정부 외교 담당
  • 1921–1944망명 언론인·학자, 『르네상스』 등 편집

알렉산드르 이바노비치 코노발로프

Александр Иванович Коновалов
입헌민주당 제정·백색진영 러시아 러시아 1875–1949 ○ 자연사

9시간 노동제를 도입한 자본가, 차르 체제를 뒤흔든 진보블록의 설계자

1917년 5월 16일, 군산업위원회 대회 연설에서 그는 경고했다: "반국가적 경향이, 대중을 최면에 빠뜨리는 구호로 자신의 본질을 위장하며, 러시아를 거대한 걸음으로 파국으로 몰아가고 있습니다."

러시아 최대 섬유 자본가 중 한 명으로, 1900년에 이미 9시간 노동제와 노동자 주택·학교·병원을 도입한 선구적 산업가였다. 진보당 창립자이자 4대 두마 부의장으로서, 제1차 세계대전 중에는 진보블록을 조직하여 차르 체제에 맞선 의회 반대파의 중심에 섰다. 1917년 2월 혁명 후 임시정부의 통상산업부 장관을 두 차례 지냈고, 마지막 내각에서는 케렌스키의 부총리로서 10월 혁명 당일 겨울궁전에서 체포된 각료 회의를 주재했다. 이후 프랑스로 망명하여 밀류코프의 『최신소식』 발행을 이끌며 러시아 망명 사회의 좌파 자유주의 진영을 대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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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897–1905가업인 콘스탄틴 직물 공장 경영, 1900년 9시간 노동제·노동자 주택·학교·병원 도입
  • 1905–1912통상산업당 공동 창립, 모스크바 증권거래소 부위원장
  • 1912–1914진보당 공동 창립, 4대 두마 의원(코스트로마), 두마 부의장
  • 1915–1917.02중앙군산업위원회 부의장, 진보블록 조직, 두마 임시위원회 위원
  • 1917.03–05임시정부 통상산업부 장관(1차), 노사 타협 추진하다 사임
  • 1917.09–10부총리 겸 통상산업부 장관, 10월 25일 겨울궁전에서 각료 회의 주재 중 체포
  • 1918–1940프랑스 망명, 『최신소식』 이사회 의장, 진보적 망명 단체 지도
  • 1941–1949미국 거주 후 파리 귀환, 1949년 사망

빅토르 니콜라예비치 페펠랴예프

Виктор Николаевич Пепеляев

콜차크 독재를 설계하고 마지막까지 함께 선 카데트 정치인

1919년 9월 22일, 그는 일기에 이렇게 적었다: 「녹스 장군이 내게 왔다. 처칠은 오직 최고 통치자만 지원하라고 훈령했다.」 붕괴 직전의 정권 내막을 기록한 총리의 목소리다.

제정 러시아의 카데트당 소속 두마 의원으로, 1918년 11월 옴스크에서 군사 쿠데타를 조직해 알렉산드르 콜차크를 '최고 통치자'로 추대하는 데 주도적 역할을 했다. 콜차크 정부에서 내무장관을 거쳐 1919년 11월 각료회의 의장(총리)에 임명되어 붕괴 직전의 백색 정부를 이끌었고, 정권의 유일한 충성파 정치인으로서 최후까지 콜차크 곁에 남았다. 1920년 1월 체코슬로바키아 군단에 의해 콜차크와 함께 이르쿠츠크 정치중앙에 넘겨졌고, 2월 7일 새벽 레닌의 직접 지시에 따라 재판 없이 총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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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12카데트당 소속 제4대 국가두마 의원 (톰스크현)
  • 1914–1917제3 시베리아 위생·급식대 대장 (제1차 세계대전)
  • 1917.02–05임시정부 크론시타트 항구 사령관 겸 정부위원
  • 1918.08–11시베리아에서 군사독재 수립 운동 주도, 옴스크 쿠데타 조직
  • 1918.12–1919.05콜차크 정부 경찰국장 → 내무차관
  • 1919.05–11콜차크 정부 내무장관
  • 1919.11–1920.01각료회의 의장 (총리)
  • 1920.01–02체코군단에 넘겨져 콜차크와 함께 이르쿠츠크 수감, 총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