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사전

용어 사전러시아 사회민주노동당

스테판 게오르기예비치 샤우먄

Степан Георгиевич Шаумян
소련 국가기관 소련 공산주의 러시아 아르메니아 1878–1918 ✕ 처형

마르크스주의로 무장한 캅카스의 레닌, 바쿠 코뮌의 지도자

바쿠 코뮌 붕괴 직전, 동료의 아내가 먼저 피하라 권하자 샤우먄은 답했다. "노동자들이 나에게 뭐라 하겠는가? 맨 먼저 도망치는 건 나에게 수치다."

아르메니아 마르크스주의의 선구자이자 캅카스 볼셰비키의 지도자. 트빌리시 상인 집안 출신으로 리가 공대와 베를린 대학에서 수학했고, 1899년 아르메니아 최초의 마르크스주의 서클을 조직했다. 「공산당 선언」을 아르메니아어로 번역하고 문학비평을 개척했으며, 1912년 프라하 협의회에서 볼셰비키 중앙위원 후보로 선출되었다. 1918년 바쿠 인민위원회의 의장으로 '바쿠 코뮌'을 이끌었고, 민족문제를 두고 레닌과 편지 논쟁을 벌인 대표적 이론가였다. 1918년 9월 26인의 바쿠 인민위원들과 함께 총살당해 소비에트 순교자가 되었다.

상세 이력 보기
  • 1898트빌리시 실과학교 졸업, 리가 공과대학 입학
  • 1899아르메니아 최초의 마르크스주의 서클 조직
  • 1900–1902RSDLP 입당, 리가 공대 퇴학, 아르메니아 사회민주주의자 연맹 창립
  • 1902–1905베를린 대학 철학부, 「공산당 선언」 아르메니아어 번역, 제네바에서 레닌과 첫 만남
  • 1906–1914RSDLP 4차·5차 대회 대의원, 바쿠 지하신문 편집, 카프카스 연합위원회 지도
  • 1912프라하 협의회에서 볼셰비키 중앙위원 후보 승인
  • 1917.03–05바쿠 노동자 대표 소비에트 초대 의장
  • 1917.11–1918.04바쿠 소비에트 집행위 의장, 레닌이 캅카스 특별 전권위원으로 임명
  • 1918.04–07바쿠 인민위원회의 의장 겸 외무위원 — 바쿠 코뮌 수립
  • 1918.09.2026인의 바쿠 인민위원과 함께 체포·총살

알렉산드르 표도로비치 먀스니코프

Александр Фёдорович Мясников
소련 국가기관 소련 공산주의 소련 아르메니아 1886–1925 ✕ 추락사

벨라루스와 아르메니아에 소비에트 권력을 세운 레닌의 변방 건설자

1917년 10월 혁명 소식이 민스크에 닿자 먀스니코프는 즉시 군사혁명위원회를 만들어 이끌었고, 소비에트 권력은 민스크에서 유혈 없이 수립되었다.

나히체반-나-도누의 아르메니아계 상인 집안에서 태어났다. 1906년 RSDLP에 입당해 불법 문헌 소지로 바쿠에 유배되었고, 그곳에서 샤우먄의 영향을 받았다. 1917년 민스크에서 서부전선 볼셰비키를 이끌어 소비에트 권력 수립을 주도했다. 1919년 2월 벨라루스 중앙집행위원회 의장을 거쳐 1921년 5월부터 아르메니아 SSR 인민위원회의 의장으로서 아르메니아의 국가 제도와 경제를 세웠다. 1922년부터 자카프카스 연방평의회 의장과 자카프카스 당 제1서기를 지냈다. 마르크스-레닌주의 이론과 아르메니아 문학에 관한 저작을 남겼다. 1925년 3월 22일 트빌리시 근처에서 비행기가 불타 추락해 아타르베코프, 모길렙스키와 함께 사망했으며 화재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다.

상세 이력 보기
  • 1906RSDLP 가입, 불법 문헌 소지로 바쿠로 유배 — 샤우먄과 교류
  • 1911–1914모스크바 대학 법학부 졸업(1911), 군 복무 후 변호사 조수로 볼셰비키 언론에 기고
  • 1914–1917제1차 세계대전 서부전선 복무, 병사들 사이에서 혁명 선전
  • 1917.09–1918.05서북지역 당위원회 의장, 민스크 군사혁명위 의장, 서부전선 총사령관
  • 1919.01–02벨라루스 SSR 초대 중앙집행위원회 의장 겸 군사인민위원
  • 1919–1920모스크바 당위원회 군사조직자·서기; 폴란드 전쟁 시 서부전선 정치국장
  • 1921–1922아르메니아 SSR 인민위원회의 의장 겸 군사인민위원, 자카프카스 SFSR 부의장
  • 1922–1925자카프카스 연방평의회 의장, 자캅카스 당 제1서기 — 소련 중앙집행위 상임위원, 혁명군사평의회 위원, 당 중앙위 후보위원
  • 1925.03.22트빌리시 근처 항공기 화재로 사망 — 아타르베코프, 모길렙스키와 함께 순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