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의 군인 출신 정치가로, 왕정과 반의회주의를 결합한 권위주의적 국가 질서를 추구했다. 1936년 국왕 게오르기오스 2세의 지지로 의회를 정지하고 8월 4일 체제를 세워 정당과 파업을 금지하고 좌파를 탄압했다. 동시에 국가 개입과 청년 조직을 통해 사회를 동원하려 했으며, 그의 체제는 파시즘과 권위주의적 보수 독재의 성격을 함께 지닌 것으로 논쟁되어 왔다. 1940년 이탈리아의 최후통첩을 거부해 전쟁을 이끌었지만, 1941년 독일 침공을 보지 못하고 사망했다.
경찰은 1940년 가짜 KKE 지도부와 위조 《리조스파스티스》를 내세워 당원들을 혼란에 빠뜨리려 했다.
그리스 육군 장교 출신인 콘스탄티노스 마니아다키스는 이오아니스 메탁사스의 4·8월 독재에서 공안과 반공 탄압을 조직한 핵심 관료였다. 그는 아시팔리아의 정보망과 고문, 섬 강제추방을 결합해 그리스 공산당(KKE)의 공개 활동과 지도부를 무력화했다. 1940년에는 경찰이 통제하는 가짜 KKE 지도부와 위조된 《리조스파스티스》를 만들어 당원들을 혼란시키려 했다. 해방 뒤에도 반공주의를 정치 자산으로 삼아 의원이 되었고, 독재 시기의 책임은 제대로 청산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