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사전: 혁명과 소련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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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 국가기관 소련 공산주의 소련 라트비아 1872–1963 ○ 자연사

1940년 소련 대사관이 정한 라트비아 괴뢰 정부의 총리로 소련 편입을 요청한 미생물학자

리보니아 마즈살라차의 소작인 집안에서 태어나 타르투 수의학교를 마쳤고, 1905년 혁명에 가담했다가 스위스로 망명해 다보스의 결핵 연구소에서 일했다. 제1차 세계대전에는 세르비아군 수의관으로, 라트비아 독립전쟁에는 수의 부대 대위로 복무했다. 1919년 라트비아 대학교에 미생물학 연구소를 세웠고 1923년 라트비아 최초의 박사 학위 논문을 썼으며, 사회민주주의 지지자였다. 1940년 6월 소련 대사관에 불려 가 새 괴뢰 정부의 수반 자리를 제안받아 총리가 되었고, 7월 21일부터는 대통령 직무도 맡아 라트비아의 소련 편입을 요청했다. 1940~1952년 라트비아 SSR 최고소비에트 상임간부회 의장을 지냈고, 1941년 공산당에 들어갔다. 1963년 리가에서 숨졌다.

상세 이력 보기
  • 1893–1901타르투 수의학교
  • 1911다보스 결핵 연구소 조수
  • 1919라트비아 대학교 미생물학 연구소 설립
  • 1940괴뢰 정부 총리, 대통령 직무대행
  • 1940–1952라트비아 SSR 최고소비에트 상임간부회 의장

공산당 서기 출신으로 라트비아 독립을 이끈 최고회의 의장

1991년 1월 14일, 쿠즈민 장군이 최고회의 의장에게 보낸 최후통첩은 단순했다. 라트비아가 채택한 법률들을 철회하라. 고르부노우스는 철회하지 않았고, 일주일 뒤 모스크바로 날아갔다.

라트비아 동부 루자 인근 필다에서 농민의 아들로 태어나 건설기술학교를 마치고 리가 공과대학과 모스크바 사회과학아카데미를 졸업했다. 라트비아 공산당 중앙위원회 서기(이념 담당)까지 올랐으나, 1988년 라트비아 인민전선의 출범을 지지하며 개혁파로 전환했고, 1990년 5월 4일 소련을 점령국으로 규정하고 독립 이행기를 개시한 최고회의 회기를 주재했다. 1991년 1월 바리케이드 시기 쿠즈민 장군의 최후통첩에도 물러서지 않았고, 1월 21일 모스크바로 날아가 고르바초프와 사태를 논의했다.

상세 이력 보기
  • 1959–1965기술자(니크라체 국영농장), 리가 농업공학연구소 직원, 소련군 복무
  • 1970–1974리가 공과대학 선임강사, 키로프 구 콤소몰 제1서기
  • 1974–1988라트비아 공산당 중앙위원회 여러 직책, 최종 이념 담당 서기
  • 1988–1990라트비아 소비에트 최고회의 간부회의 의장
  • 1990–1993라트비아 공화국 최고회의 의장, 독립 회복 후 국가원수 대행
  • 1993–1995제5대 사에이마(국회) 의장
  • 1995–2002부총리, 환경보호지역개발장관, 교통장관 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