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코슬로바키아 공산당 서기장으로 1948년 2월 쿠데타를 조직하고 인민민주주의 체제를 구축한 실무 책임자
1947년 9월 코민포름 회의에서 슬란스키는 모스크바의 권력 장악 지령을 받고 프라하로 돌아왔다. '국제 무대에서처럼 국내 전선에서도 공세로 전환했다' — 1948년 2월 쿠데타의 서막이었다.
1929년 KSČ 중앙위원·정치국원이 된 후 고트발트의 최측근으로 부상했다. 대전 중 모스크바에서 체코슬로바키아 방송을 이끌고 1944년 슬로바키아 민족봉기에 참가했다. 1945~1951년 서기장으로서 당 기구를 장악해 1948년 2월 쿠데타의 실무를 지휘, 체코슬로바키아를 소비에트형 인민민주주의 국가로 전환시켰다. 1951년 체포되어 1952년 반국가 음모·트로츠키주의·티토주의·시오니즘 혐의로 사형당했으며, 이 재판은 동구권 숙청 중 가장 뚜렷한 반유대주의 성격을 띠었다. 1963년 사법 복권, 1968년 당적 회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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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21체코슬로바키아 공산당(KSČ) 입당
- 1924KSČ 기관지 《루데 프라보》 편집자
- 1927–1928KSČ 오스트라바 지역당 서기
- 1928–1929KSČ 클라드노 지역당 서기
- 1929KSČ 중앙위원·정치국원 선출
- 1935–1938체코슬로바키아 국회의원
- 1939–1945모스크바 망명, 체코슬로바키아 라디오 방송 주필, 슬로바키아 민족봉기 참가
- 1945–1951KSČ 중앙위원회 서기장
- 1948인민민병대 사령관 겸직, 2월 쿠데타 실무 지휘
- 1951체코슬로바키아 부총리
스탈린주의 정통을 고수하다 프라하의 봄 개혁운동에 의해 축출된 체코슬로바키아 지도자
1965년 메이데이 집회 직후 즉석 인터뷰에서 "고기가 곧 나올 겁니다!"(Maso bude vbrzku!)라고 선언했다. 국민들은 "그 '곧'이라는 곳이 도대체 어디냐"고 물으며 온 나라가 웃었다.
1921년 KSČ 창립 당원이자 자물쇠공 출신으로, 슬란스키 숙청 과정에서 당 기구를 타고 부상했으며, 고트발트 사후 제1서기(1953–1968)와 대통령(1957–1968)을 겸직하며 15년간 체코슬로바키아를 통치했다. 스탈린주의 정통을 고수하며 중앙계획·검열을 강화하고 1950년대 정치재판 청산을 거부했으나, 경제 침체와 슬로바키아의 불만이 누적되며 정권 기반이 잠식되었다. 1968년 1월 둡체크에게 당직을 내주며 강제 사임함으로써 개혁의 최대 장애물이 제거되었고, 이는 곧바로 프라하의 봄을 촉발했다. 1971년 정상화 국면에서 중앙위원으로 재선되었으나 실질적 영향력은 없었고, 1975년 프라하에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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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21체코슬로바키아 공산당(KSČ) 창립 당원으로 입당
- 1937–1938KSČ 호도닌 지역위원회 서기
- 1941–1945나치 점령 하 지하활동으로 체포, 마우트하우젠 수용소 수감
- 1945–1951KSČ 프라하 시당 제1서기
- 1951–1953KSČ 정치서기국 위원 겸 부총리
- 1953–1968KSČ 중앙위원회 제1서기
- 1957–1968체코슬로바키아 대통령
- 1971정상화 국면 KSČ 중앙위원 재선
인간의 얼굴을 꿈꾸다 산림청으로 보내진 사람
1968년 8월 21일 새벽, 소련군 장교들이 둡체크의 사무실로 들이닥쳐 전화선을 끊고 수갑을 채웠다. 한 장교가 말했다: '필요하다면 체코인 백만 명을 죽여서라도 반혁명을 끝장낼 것이다.'
프라하의 봄을 이끈 슬로바키아 개혁공산주의자. 소련에서 소년기를 보내고 1968년 검열 폐지와 '인간의 얼굴을 한 사회주의'를 추진했으나, 바르샤바조약군 침공 후 실각해 산림청 직원으로 15년을 보냈다. 1989년 하벨과 함께 발코니에 다시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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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25–1938소련 이주 노동자 가정에서 성장
- 1944슬로바키아 민족봉기 참가
- 1963–1968슬로바키아 당 제1서기
- 1968.01체코슬로바키아 당 제1서기: 프라하의 봄
- 1968.08모스크바로 연행, 의정서 서명 강요
- 1969–1970해임, 터키 대사를 거쳐 산림청으로
- 1989.12연방의회 의장으로 복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