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사전: 혁명과 소련의 사람들

알렉산데르 둡체크

Alexander Dubček

인간의 얼굴을 꿈꾸다 산림청으로 보내진 사람

1968년 8월 21일 새벽, 소련군 장교들이 둡체크의 사무실로 들이닥쳐 전화선을 끊고 수갑을 채웠다. 한 장교가 말했다: '필요하다면 체코인 백만 명을 죽여서라도 반혁명을 끝장낼 것이다.'

프라하의 봄을 이끈 슬로바키아 개혁공산주의자. 소련에서 소년기를 보내고 1968년 검열 폐지와 '인간의 얼굴을 한 사회주의'를 추진했으나, 바르샤바조약군 침공 후 실각해 산림청 직원으로 15년을 보냈다. 1989년 하벨과 함께 발코니에 다시 섰다.

상세 이력 보기
  • 1925–1938소련 이주 노동자 가정에서 성장
  • 1944슬로바키아 민족봉기 참가
  • 1963–1968슬로바키아 당 제1서기
  • 1968.01체코슬로바키아 당 제1서기: 프라하의 봄
  • 1968.08모스크바로 연행, 의정서 서명 강요
  • 1969–1970해임, 터키 대사를 거쳐 산림청으로
  • 1989.12연방의회 의장으로 복귀

올드르지흐 체르니크

Oldřich Černík

프라하의 봄을 이끈 광부 출신 기술관료 총리

1968년 7월, 「2000개의 말」 선언을 둘러싼 논란 속에서 체르니크는 의회 연설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 선언은 결코 반혁명의 표현이 아니라 당의 한 분파의 의견일 뿐이다.'

체코슬로바키아의 개혁공산주의 총리(1968~1970). 광산 노동자 출신 기술관료로, 연료·에너지 장관과 국가계획위원회 의장을 거쳐 1968년 4월 행동강령을 채택한 당 중앙위 전원회의에서 총리로 임명되었다. 둡체크와 함께 프라하의 봄을 이끌었고, 8월 침공 후 소련에 연행되어 모스크바 의정서에 서명했다. 귀국 후 개혁 지속을 약속했으나, 후사크 체제 아래 1970년 해임·제명되고 20년간 연구소 부소장으로 밀려났다.

상세 이력 보기
  • 1921오스트라바 광산 노동자 가정에서 출생, 선반공으로 일함
  • 1945–1949KSČ 입당, 오스트라바 고등광산학교 졸업
  • 1956–1960KSČ 중앙위원회 서기
  • 1960–1963연료·에너지 장관
  • 1963–1968부총리 겸 국가계획위원회 의장
  • 1968.04–1970.01체코슬로바키아 총리: 행동강령, 프라하의 봄, 모스크바 의정서
  • 1970–1971해임, KSČ 제명
  • 1970–1989프라하 연구소 경제 부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