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노버주 뮌덴에서 태어나 1918년 수병 반란에 가담했고 1919년 공산당에 들어가 당 군사조직을 이끌었다. 1932~1933년 제국의회 의원을 지냈다. 망명 중 1936~1940년 「볼베버 동맹」을 조직해 파시스트 국가들의 선박에 21건의 파괴공작을 벌였고, 스페인 공화국군에 무기를 댔다. 1946년 귀국해 해운 행정을 맡았다. 1953년 7월 차이서가 물러나 국가보안부가 국가보안청으로 격하되자 그 수장이 되었고, 1955년 11월 다시 국가보안부 장관이 되었다. 울브리히트·호네커와 충돌하고 시르데반 편에 섰다가 1957년 물러났고, 1958년 「분파 활동」으로 중앙위원회에서 쫓겨났다. 1967년 동베를린에서 죽었다.
헤센 라우터바흐의 구리 세공인 아들로 열일곱에 광부가 되었고, 1차 세계대전에 나가 1918년 병사평의회에 들었다. 1920년 독립사회민주당, 1922년 공산당에 들어가 작센 지구당 정치 책임자와 제국의회 의원이 되었다. 1933년 체포되어 감옥과 작센하우젠·플로센뷔르크 등 강제수용소에서 나치 시대를 버텼다. 전후 작센 경제·계획장관을 거쳐 독일경제위원회 부위원장이 되었고, 동독에서 공업장관과 중공업장관을 지냈다. 1953년 6월 16일 각료의 집 앞 군중 속에 들어가 책상 위에서 연설했으나 야유에 묻혔다. 1958년 울브리히트에게 「일탈적 태도」로 몰려 직책에서 밀려난 뒤 작가로 살았고, 1975년 동베를린에서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