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립파를 이끈 라오스의 마지막 왕실 총리
1975년 11월, 왕정의 마지막 총리가 이복동생 수파누봉과 함께 국왕 사왕 밧타나를 찾아가 퇴위를 권했다.
라오스 왕실 출신의 정치가로, 중립파를 이끌며 우파와 파테트라오 사이에서 여러 차례 연립정부를 이끈 총리였다. 왕정의 마지막 총리로서 1974년부터 제3차 연립정부 수반을 맡았다. 1975년 11월 수파누봉과 함께 루앙프라방으로 날아가 국왕 사왕 밧타나의 퇴위를 설득했고, 12월 전국인민대표대회 개막 직후 사임했다. 공화국 수립 뒤 새 정부의 고문으로 남아 1984년 비엔티안에서 사망했다.
상세 이력 보기
- 1945라오이사라 임시정부 공공사업 장관
- 1951–1954총리
- 1956–1958총리 (민족화해·연립 내각)
- 1960국민의회 의장·총리
- 1962삼왕자 합의로 민족통일정부 총리
- 1974–1975제3차 연립정부 총리
- 1975사임, 새 정부 고문
파테트라오와 초대 국가주석
1949년 미국 외교관에게 라오스를 '계급 없는 불교 국가'라 했던 왕자가, 뒷날 '붉은 왕자'로 불리는 공산 라오스의 초대 국가주석이 됐다.
라오스 왕족 출신의 혁명 지도자로 파테트라오의 대표적 인물이었다. 연립정부와 민족화해 과정에 참여했으며 1975년 인민민주공화국의 초대 국가주석이 됐다. 당과 정부를 이끈 카이손 폼비한과 국가 내 역할이 달랐다.
상세 이력 보기
- 1945라오이사라 정부 외교장관·라오스 해방군 총사령관
- 1950라오스자유전선(파테트라오) 창립·의장
- 1956라오스애국전선(네오라오학삿) 의장
- 1957–1958계획·재건·도시개발 장관
- 1962–1963부총리 겸 경제계획 장관
- 1974국가정치협의회 의장
- 1975–1991라오인민민주공화국 초대 국가주석 (1986년부터 포우미 봉비칫이 대행)
라오스 혁명 지도자·국가주석
1975년 12월 2일 전국인민대표대회는 누학을 라오스인민민주공화국 정부의 부총리 겸 재무장관으로 선출했다. 공화국 수립을 선포한 의장은 누학이 아닌 카이손 폼비한으로 기록되어 있다.
라오스인민혁명당 창당 멤버이자 파테트라오 혁명의 핵심 지도자였다. 시암(현 태국) 무크다한의 라오계 가정에서 태어났으며, 1955년 창당 당시 정치국에서 카이손 다음 서열이었고 1972년 제2차 당대회에서 정치국에 들어가 경제 업무를 맡았다. 1975년 이후 부총리 겸 재무장관을 지냈고, 1992년부터 1998년까지 국가주석을 지냈다.
상세 이력 보기
- 1945라오스 혁명운동 창립 참여
- 1949동부지역 라오 저항위원회 의장
- 1950라오 저항정부 재무장관
- 1954제네바 회담 파테트라오 대표
- 1955창당대회에서 정치국 서열 2위
- 1972제2차 당대회에서 정치국 진입, 경제 업무 담당
- 1975부총리 겸 재무장관
- 1989제2기 최고인민의회 의장
- 1992국가주석
라오스 혁명과 경제개혁
1975년 12월 그는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군주제 폐지와 라오스인민민주공화국 수립을 선포했다.
라오스인민혁명당 지도자이자 1975년 공화국 수립 후 총리였다. 베트남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국가를 재편했고, 1980년대에는 신경제체제로 이어지는 시장 지향 개혁을 이끌었다. 1991년 국가주석이 됐다.
상세 이력 보기
- 1942인도차이나공산당 입당
- 1947라오스 북동부 저항 지도, 인민무장조직 구성
- 1949라오인민해방군 창설
- 1950저항정부 국방장관
- 1955라오인민혁명당 중앙위원회 서기장
- 1975라오인민민주공화국 초대 총리
- 1986'신경제체제'(찐타깐마이) 개혁 발표
- 1991국가주석
라오스 왕국군 장성, 몽족 ‘비밀군대’ 지휘
1975년 5월의 시점을 두고 사료가 갈린다. 한쪽은 5월 5일 수바나 푸마 앞에서 협력을 요구받은 때를, 다른 쪽은 5월 14일 헬리콥터로 롱티엥을 떠나며 포격이 시작된 때를 종결로 본다.
라오스 시엥쿠앙 주 농헷 출신 몽족 군인. 왕국군에서 장성까지 오른 유일한 몽족이었다. 1960~70년대 롱티엥을 근거지로 중앙정보국이 훈련·지원한 비정규 ‘비밀군대’를 지휘하며 파테트라오와 베트남인민군에 맞섰다. 1975년 5월 공산 세력의 장악 속에 태국으로 빠져나온 뒤 미국으로 건너가 몬태나를 거쳐 캘리포니아에 정착했고, 미국 몽족 사회의 지도자로 활동하며 1980~90년대 태국 내 난민 강제 송환 저지에 힘을 보탰다. 1981년 라오스 국가해방통일전선(네오홈) 창립에 참여했다. 2007년 미국에서 라오스 정부 전복 모의 혐의로 기소됐으나 2009년 모든 연방 혐의가 취하됐다.
상세 이력 보기
- 1960년대–1975라오스 왕국군 소장, 롱티엥 근거지의 중앙정보국 지원 ‘비밀군대’ 지휘
- 1975태국으로 피난 후 미국 이주
- 1981라오스 국가해방통일전선(네오홈) 창립 참여
- 2007–2009미국에서 중립법 위반 혐의로 기소, 연방 혐의 전부 취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