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사전: 혁명과 소련의 사람들

드미트리 세르게예비치 리하초프

Дмитрий Сергеевич Лихачёв
반체제 인사 러시아 러시아 1906–1999 ○ 자연사

솔로프키를 살아남은 고대루스 문학의 세계적 권위자, 후기 소련의 도덕적 양심

1929년 가을 솔로프키. 체포대가 온다는 말을 듣고 장작더미 속에 숨어 밤새 총성을 들었다. 날이 밝자 깨달았다. "내 대신 죽은 이를 위해 두 사람 몫을 살아야 한다."

상트페테르부르크 출신 문헌학자·문화사가. 1928년 반혁명 활동으로 솔로프키 수용소에서 4년간 복역했다. 석방 후 푸시킨관에서 고대루스 문학을 연구했으며, 『이고리 원정기』 연구와 『고대루스 문학 기념물』 총서 편찬을 주도했다. 1970년 과학아카데미 정회원, 1986년 소비에트 문화재단 초대 이사장을 지냈다. 평생 공산당에 입당하지 않았고 사하로프 제명에 반대했으며, 페레스트로이카기에는 인민대표로 활동하며 '러시아의 양심'으로 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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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28–1932반혁명 활동 혐의 체포, 솔로프키 수용소 및 벨발트라그 복역
  • 1938소련 과학아카데미 러시아문학연구소(푸시킨관) 연구원
  • 1947문헌학 박사
  • 1953소련 과학아카데미 통신회원
  • 1970소련 과학아카데미 정회원(아카데미크)
  • 1986–1993소비에트(러시아) 문화재단 이사장
  • 1989–1991소련 인민대표

게오르기 호스로예비치 샤흐나자로프

Георгий Хосроевич Шахназаров

소련 정치학의 창시자, 페레스트로이카 정치개혁의 두뇌

「고르바초프도, 나도, 우리 모두 이중사고자였다. 머릿속에서 진실과 선전을 끊임없이 저울질해야 했다. 반체제냐 굴종이냐, 그게 선택지였다」

바쿠 출신 아르메니아계 정치학자·법학박사. 소련 정치학회를 창립해 17년간 이끌며 사회주의 민주주의 이론을 개척했고, 소비에트 사회 내 이익집단의 다원성을 인정한 초기 이론가 중 한 명이었다. 고르바초프 보좌관으로서 당 독점 폐지·경선 도입·대통령제 전환의 헌법개혁을 설계했으며, 퇴임 후 회고록 『자유의 대가』를 집필하고 SF 작가 '게오르기 샤흐'로도 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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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41–1945포병대 화기소대장·포대정찰반장, 쾨니히스베르크·세바스토폴·민스크 해방전 참전
  • 1949–1952아제르바이잔 국립대 법학부 졸업, 소련 과학아카데미 법학연구소 대학원
  • 1952–1960정치출판사(Politizdat) 편집자
  • 1960–1964『정치자습』·『평화와 사회주의의 제문제』(프라하) 근무
  • 1964–1988중앙위 사회주의국가부 자문관 → 부부장 → 제1부부장 (동독·폴란드·체코·쿠바 담당)
  • 1969법학박사: 논문 「사회주의 민주주의: 문제와 전망」
  • 1973–1990소련 정치학회 회장, 국제정치학회(IPSA) 부회장
  • 1987소련 과학아카데미 통신회원, 연방최고회의 대의원
  • 1988–1991고르바초프 보좌관 → 소련 대통령 고문: 정치개혁·헌법개정 설계
  • 1990–1991인민대의원, 최고회의 헌법입법소위원회 위원장
  • 1992–2001고르바초프 재단 글로벌문제센터 소장

블라디미르 알렉산드로비치 쿠르노소프

Владимир Александрович Курносов
소련 → 러시아 러시아인 1926–1998 ○ 자연사

체르노빌 4호기를 봉인한 '대피호'의 저자이자 기술 책임자

그는 파괴된 원자로를 조사하기 위해 기중기 갈고리에 매달린 '바티스카프'에 직접 올라탔다.

탐보프 출신의 소련 원자력 건설 기술자로, 1953년 레닌그라드 공학건설연구소를 졸업한 뒤 ВНИПИЭТ에 입사해 평생 한 연구소에서 일했다. 1957년 키시팀 사고 수습 프로젝트를 이끌었고, 1986년 체르노빌에서는 불과 206일 만에 4호기를 봉인하는 '대피호'(석관) 프로젝트의 저자 겸 기술 책임자로서, 방사능 현장을 직접 '바티스카프'에 매달려 조사하며 세계 유례없는 공학적 해법을 설계했다. 훗날 ВНИПИЭТ의 총책임자(1989~1998)로 재직하며 아르자마스 사고와 키로바칸 지진 복구에도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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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53ВНИПИЭТ 입사, 엔지니어로 시작
  • 1957키시팀 사고(첼랴빈스크-65) 수습 프로젝트 책임자
  • 1985–1989ВНИПИЭТ 주임기사
  • 1986체르노빌 4호기 '대피호'(석관) 프로젝트 저자 겸 기술 책임자
  • 1989–1998ВНИПИЭТ 총책임자(원장)
  • 1996러시아 연방 공훈건설자 칭호 수여

타티야나 이바노브나 자슬랍스카야

Татьяна Ивановна Заславская

소비에트 경제사회학의 창시자, 페레스트로이카의 지적 뇌관

「소비에트 경제학자로서 국가로부터 높은 봉급을 받는 11명의 학자 중 한 사람으로서, 나는 경제와 사회의 상태에 대해 인민 앞에 개인적으로 책임을 진다고 생각한다」 — 1983년

물리학도에서 경제학으로 전향한 키이우 출신 학자. 노보시비르스크에서 농촌사회를 연구하며 소비에트 경제사회학을 개척했고, 1983년 계획경제의 구조적 모순을 진단한 내부 보고서를 작성했다. KGB가 압수했으나 서방으로 유출되어 『노보시비르스크 선언』으로 불리며 페레스트로이카의 지적 토양이 되었다. 소비에트 사회학 협회 회장, VTsIOM 초대 소장, 인민대의원으로 사하로프·옐친과 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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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43–1950모스크바대 물리학과 3년 수료 후 경제학부 우등 졸업
  • 1950–1963과학아카데미 경제연구소, 농업 부문 연구, 1956년 кандидат 학위
  • 1963–1987노보시비르스크 IEiOPP, 1967년 사회문제 부서장, 경제사회학 학파 창립
  • 1968과학아카데미 통신회원
  • 1981과학아카데미 정회원(당시 여성 학자 5명 중 한 명)
  • 1983「노보시비르스크 선언」: 계획경제의 구조적 모순과 사회적 경직을 진단
  • 1986–1991소비에트 사회학 협회 회장
  • 1988–1992VTsIOM(전연방 여론연구센터) 창립 소장
  • 1989–1991인민대의원, 사하로프·옐친과 지역간 대의원 그룹에서 활동

올레크 티모페예비치 보골몰로프

Олег Тимофеевич Богомолов
소련공산당·볼셰비키 소련 공산주의 소련 러시아계 1927–2015 ○ 자연사

사회주의권 경제 통합과 개혁을 연구한 경제학자

그는 소련 경제의 정체가 페레스트로이카에 첫 자극을 주었다고 회고했다.

올레크 보골몰로프는 사회주의권의 국제경제 관계를 연구한 소련 경제학자이자 학술기관 운영자였다. 그는 동유럽의 헝가리와 유고슬라비아 개혁 경험을 비교 연구하며 계획경제의 경직성과 시장 메커니즘의 가능성을 함께 검토했다. 안드로포프가 경제 개혁 준비를 추진한 1983년에는 관련 위원회에 참여해 개혁 논의에 전문 지식을 제공했다. 이후에도 시장과 사회적 보호를 결합하는 점진적 개혁을 주장하며 페레스트로이카의 경제적 선택지를 넓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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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49대외무역부 고등무역학교 졸업
  • 1954국제경제학 박사학위 취득
  • 1962–1969소련 공산당 중앙위원회와 대외무역 관련 기관에서 근무
  • 1967–1977모스크바 국립대학교 해외 사회주의 국가 경제지리학 강좌장
  • 1969–1991사회주의체제세계경제연구소 소장
  • 1981소련 과학아카데미 정회원
  • 1983안드로포프 경제 개혁 준비 위원회 참여
  • 1989–1991소련 인민대회 대의원

이반 티모페예비치 프롤로프

Иван Тимофеевич Фролов

페레스트로이카의 철학적 기초를 놓은 마르크스주의 인문학자: 유전학에서 인간학까지

「나는 '당의 과학'이라는 개념 자체를 비판한다. 정치는 과학의 철학적 해석에만 관여할 뿐, 과학 자체를 평가할 수 없다」 — 『유전학과 변증법』, 1968년

리센코주의를 철학적으로 무너뜨린 마르크스주의 철학자. 고르바초프의 보좌관으로 페레스트로이카에 '진정한 휴머니즘'을 제시했으며, 생명윤리와 인간 종합연구를 개척했다. 프라우다 주필과 정치국원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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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53모스크바대 철학부 졸업 (은메달)
  • 1958철학 후보박사 — 「결정론과 목적론」
  • 1965–1968CPSU 중앙위 이념담당 서기 보좌관
  • 1966철학 박사 — 「생물학 방법론의 문제들」
  • 1968–1977『철학의 제문제』 주필, 1968년 『유전학과 변증법』 출간
  • 1976소련 과학아카데미 통신회원
  • 1987소련 과학아카데미 정회원
  • 1986–1987『콤무니스트』 주필, TV 「철학 대화」 진행
  • 1987–1989고르바초프 서기장의 과학·교육·문화 보좌관
  • 1989–1991『프라우다』 주필
  • 1989–1990CPSU 중앙위 서기
  • 1990–1991CPSU 중앙위 정치국원
  • 1991–1999러시아 과학아카데미 인간연구소 창설·소장

아벨 게제비치 아간베갼

Абел Гезевич Аганбегян

고르바초프의 수석 경제 고문이자 페레스트로이카의 시장개혁 설계사

페레스트로이카는 소비에트 사회 전체의 혁명적 쇄신이다. 성장의 가속은 민주화와 글라스노스트에서 분리될 수 없다. (1988)

트빌리시 태생의 아르메니아계 수리경제학자. 노보시비르스크 IEiOPP 소장(1966–1984)으로 시베리아 개발과 BAM의 경제 토대를 설계하고 『EKO』를 창간했다. 1985년 고르바초프의 수석 경제 고문이 되어 기업 자율성 확대, 시장 요소 도입, 대외경제 개방이라는 개혁 청사진을 제시했다. 과학아카데미 경제분과 서기(1986–1989)로 활동하며 소비에트 계획경제 안에서 최대한의 변화를 모색했고, 소련 해체 후 국민경제아카데미 총장(1989–2002)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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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55–1961노동·임금 국가위원회에서 경제학자로 근무
  • 1961–1966노보시비르스크 IEiOPP 섹터장, 33세에 소장
  • 1966–1984IEiOPP 소장, BAM 과학위원회 의장, 『EKO』 창간·편집장
  • 1974과학아카데미 정회원 (1964년 통신회원)
  • 1985–1989고르바초프 경제 고문, 생산력연구위원회 의장
  • 1986–1989과학아카데미 경제분과 아카데미크-서기, 상임위원
  • 1989–2002소련·러시아 정부 산하 국민경제아카데미 총장
  • 2002–현재국민경제아카데미 경제이론·정책 학과장, 저술 활동 지속

알렉산드르 빅토로비치 넴초프

Александр Викентьевич Немцов
소련 러시아인 1933–

반알코올 캠페인으로 100만 명이 살았다고 추계한 러시아 알코올 역학의 권위자

"반알코올 캠페인은 100만 명 이상의 생명을 구했다." 넴초프가 25년 연구 끝에 내린 결론이다.

모스크바 의대를 졸업하고 정신과 의사로 출발해 모스크바 정신의학연구소에서 평생을 연구한 알코올 역학의 개척자다. 1985년 반알코올 캠페인을 계기로 실제 알코올 소비량과 그로 인한 사망 규모를 추계하는 방법론을 개발했으며, 캠페인이 약 100만 명의 생명을 구했다는 추정치를 제시해 국제적 논의의 기준점을 만들었다. 고르바초프 시기와 소련 붕괴 이후의 알코올 관련 초과 사망을 추적하며 알코올 정책과 공중보건의 관계를 실증한 그의 연구는 러시아 인구위기의 핵심적 설명틀로 자리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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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33모스크바에서 출생
  • 1977의학박사 학위 취득
  • 1982알코올 중독 문제 연구 시작, 1985년부터 역학 조사
  • 1987실제 알코올 소비량 추계 방법론 개발
  • 1990알코올 관련 사망률 추계 방법론 개발
  • 1996모스크바 정신의학연구소 정보학·체계연구부장
  • 2011『러시아 알코올 현대사』 영문판 출간 (쇠데르턴 대학)

유리 니콜라예비치 아파나시예프

Юрий Николаевич Афанасьев

보수파를 '공격적으로 복종하는 다수'라 칭한 역사가

1989년 5월 27일, 제1차 인민대표회의 연단에서 보수파 의원들을 향해: "여기 계신 분들은 공격적으로 복종하는 다수를 이루고 있습니다.… 우리는 스탈린-브레즈네프식 최고회의를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1989년 제1차 소련 인민대표회의에서 보수파를 '공격적으로 복종하는 다수'라고 규정한 역사가. 프랑스 아날학파 연구자로 출발해 모스크바 역사·기록연구소 학장(1986-1991)을 거치며 소련 역사학의 탈스탈린화를 주도했고, 사하로프·옐친과 함께 지역간 의원 그룹 공동의장으로 민주개혁을 이끌었다. 1991년에는 러시아국립인문대학(RSUH)을 설립해 당 고등학교 건물에 독립적 인문학 공간을 열었고, 이후 옐친과 푸틴의 권위주의를 공개 비판하며 마지막까지 체제와 거리를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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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57–1966크라스노야르스크 수력발전소 콤소몰 서기
  • 1972–1981고등콤소몰학교 교수·부총장
  • 1983–1986『콤무니스트』 역사부문 편집위원
  • 1986–1991모스크바 역사·기록연구소 총장; 탈스탈린화 주도
  • 1989–1993소련 인민대표; 지역간 의원 그룹 공동의장
  • 1990–1992'민주 러시아' 공동 창립자·공동의장; 1990년 탈당
  • 1991–2003러시아국립인문대학(RSUH) 설립자·총장

예브게니 그리고리예비치 야신

Евгений Григорьевич Ясин
자유주의·공화주의 러시아 러시아계 1934–2023 ○ 자연사

계획경제에서 시장경제로의 전환을 설계한 자유주의 경제학자

1968년, 소련 탱크의 체코슬로바키아 진주로 프라하의 봄이 짓밟힌 것을 지켜본 야신은 훗날 '나에게는 그때 모든 것이 분명해졌다'고 회고했다.

예브게니 야신은 소련 말기 계획경제를 시장경제로 전환하려는 개혁 구상을 발전시킨 경제학자였다. 그는 샤탈린 그룹의 500일 프로그램 공동 작성자로 참여해 급진적 시장 전환의 청사진을 제시했으며, 소련의 해체 뒤에는 러시아의 개혁 국가기구에서 일했다. 옐친 정부의 경제부 장관으로서 시장개혁을 추진했지만, 전환의 사회적 비용과 국가 역량의 문제를 둘러싼 논쟁에서도 자유주의 노선을 대표했다. 이후 고등경제대학과 자유주의 사상 재단을 이끌며 러시아의 경제정책과 공론장에 영향을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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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57오데사 수문공학연구소 졸업, 교량 건설기사
  • 1963모스크바 국립대학교 경제학부 졸업
  • 1964–1973중앙통계국 연구소 부서장·연구실장
  • 1973–1989소련 과학아카데미 중앙경제수학연구소 연구실장
  • 1989–1991소련 각료회의 경제개혁 국가위원회 부서장, 500일 프로그램 공동 작성자
  • 1994–1997러시아 연방 경제부 장관
  • 1998–2021고등경제대학 학술감독
  • 2000–2019자유주의 사명 재단 대표

니콜라이 야코블레비치 페트라코프

Николай Яковлевич Петраков
소련공산당·볼셰비키 소련 공산주의 소련 러시아 1937–2014 ○ 자연사

가격 이론에서 시장 전환까지 나아간 경제학자

그는 500일 프로그램을 통해 가격 형성 연구를 소련 경제의 시장 전환 구상으로 밀어붙였다.

니콜라이 페트라코프는 가격 형성과 경제적 균형을 수학적으로 분석하며 계획경제의 작동 원리를 연구한 소련 경제학자였다. 그는 시장 메커니즘과 가격 개혁을 탐구했고, 1990년 스타니슬라프 샤탈린과 그리고리 야블린스키의 500일 프로그램 공동 저자로 참여했다. 이 구상은 사유화와 가격 자유화, 공화국으로의 권한 이양을 통해 소련 경제를 시장으로 전환하려 했으며, 페트라코프의 연구와 정책 활동은 학술적 모델과 급박한 정치적 선택이 만나는 지점을 보여 준다. 그는 이후 시장문제연구소를 세워 시장 전환과 경제정책 연구를 이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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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59모스크바국립대학교 경제학부 졸업
  • 1963경제학 후보학위 취득, 산업 생산의 수익성과 가격 형성 연구
  • 1970–1989모스크바국립대학교 경제학 교수
  • 1972경제학 박사학위 취득, 계획경제의 가격 형성 연구
  • 1984–1990소련 과학아카데미 회원
  • 1990소련 공산당 중앙위원회 총서기 경제 담당 보좌관, 이후 소련 대통령 경제 담당 보좌관
  • 1990샤탈린-야블린스키 500일 프로그램 공동 저자
  • 1990–2014러시아 과학아카데미 시장문제연구소 설립자 겸 초대 원장

니나 알렉산드로브나 안드레예바

Нина Александровна Андреева
소련공산당·볼셰비키 소련 공산주의 소련 러시아인 1938–2020 ○ 자연사

「나는 원칙을 양보할 수 없다」로 페레스트로이카를 정면 공격한 레닌그라드의 화학 강사

“우리 언론은 지금 스탈린에 대해 거짓말을 하고 있다. 그들은 우리 역사를 먹칠하고 있다.”

레닌그라드 출신의 화학자이자 공산당원으로, 1988년 3월 『소비에츠카야 로시야』에 「나는 원칙을 양보할 수 없다」를 발표해 페레스트로이카를 정면으로 비판하고 스탈린을 옹호했다. 이 글은 당 중앙위원회 서기 예고르 리가초프의 지원 아래 작성되어 '반페레스트로이카 세력의 선언'으로 불렸으며, 고르바초프로 하여금 정치 개혁을 가속화하게 한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1991년 이후 전연방 볼셰비키 공산당(VKPB)을 창당해 총서기를 지내며 소련 체제의 복원을 주장했으나, 러시아 정치 무대에서 실질적 영향력을 행사하지는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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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61레닌그라드 공과대학 졸업, 화학공학자
  • 1966CPSU 입당
  • 1972–1988레닌그라드 공과대학 물리화학과 조교수·선임강사
  • 1979–1981CPSU에서 제명되었다가 당통제위원회 심사로 복권
  • 1988.03『소비에츠카야 로시야』에 「나는 원칙을 양보할 수 없다」 발표
  • 1989전연방협회 '옌딘스트보(통일)' 창립, 조정위원회 의장
  • 1991–2020전연방 볼셰비키 공산당(VKPB) 창당, 중앙위 총서기
  • 2020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