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12월 31일 모스크바 시간 낮 12시 신년사 방송에서: "여러분, 나는 사임합니다. 나는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했습니다.… 우리의 많은 꿈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에 대해 용서를 구합니다."
1931년 우랄 부트카에서 집단화로 몰락한 부농 집안의 아들로 태어나 2007년 모스크바에서 죽었다. 건설 기술자로 일하다 1961년 입당해 스베르들롭스크 주 당 제1서기(1976–85)와 모스크바 당 제1서기(1985–87)를 지냈고, 1987년 10월 21일 중앙위원회 총회에서 지도부를 비판한 뒤 해임되었다. 1990년 러시아 연방 인민대의원, 이어 최고소비에트 의장(1990–91)이 되었고 1991년 6월 대통령에 당선되어 1999년까지 재임했다.
1968년, 소련 탱크의 체코슬로바키아 진주로 프라하의 봄이 짓밟힌 것을 지켜본 야신은 훗날 '나에게는 그때 모든 것이 분명해졌다'고 회고했다.
예브게니 야신은 소련 말기 계획경제를 시장경제로 전환하려는 개혁 구상을 발전시킨 경제학자였다. 그는 샤탈린 그룹의 500일 프로그램 공동 작성자로 참여해 급진적 시장 전환의 청사진을 제시했으며, 소련의 해체 뒤에는 러시아의 개혁 국가기구에서 일했다. 옐친 정부의 경제부 장관으로서 시장개혁을 추진했지만, 전환의 사회적 비용과 국가 역량의 문제를 둘러싼 논쟁에서도 자유주의 노선을 대표했다. 이후 고등경제대학과 자유주의 사상 재단을 이끌며 러시아의 경제정책과 공론장에 영향을 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