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사전: 혁명과 소련의 사람들

미르 자파르 아바소비치 바기로프

Мир Аббасович Джафар Багиров
소련 국가기관 소련 공산주의 소련 아제르바이잔 1895–1956 ✕ 처형

아제르바이잔을 20년간 통치한 스탈린 시대의 당 서기

재판에서 진술은 몇 마디에 그쳤고, 그중 하나는 "나를 망친 것은 스탈린에 대한 나의 믿음이었다"였다고 전해진다.

아제르바이잔 공산당 중앙위원회 제1서기(1933~1953)로 20년간 공화국을 통치했다. 체카·GPU·OGPU 의장과 내무인민위원을 지낸 인물로, 대숙청기에 공화국 당·국가 간부와 지식인에 대한 대량 탄압을 주도했고 베리야 실각 후 몰락해 1956년 5월 총살형에 처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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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17볼셰비키당 입당 (1917년 3월 또는 1918년 — 기록 충돌), 쿠바 혁명위원회 부의장
  • 1918–1920러시아 내전: 연대장, 아제르바이잔 사단 군사위원, 혁명군사재판소장
  • 1921–1927아제르바이잔 SSR 체카·GPU·OGPU 의장, 내무인민위원
  • 1929–1930아제르바이잔 SSR GPU·OGPU 의장 (재임)
  • 1932–1933아제르바이잔 SSR 인민위원회 의장
  • 1933–1953아제르바이잔 공산당 중앙위원회 제1서기 (20년), 바쿠 시당위원회 제1서기 겸임 (1950년까지)
  • 1953CPSU 중앙위 상임위원 후보 (3~7월), 아제르바이잔 SSR 각료회의 의장
  • 1954–19561954년 3월 체포, 1956년 4월 사형 선고·5월 총살 집행 (5월 26일설과 5월 7일설이 엇갈림)

보리스 리보비치 반니코프

Борис Львович Ванников
소련 국가기관 소련 공산주의 소련 아제르바이잔 1897–1962 ○ 자연사

탄약과 원자력 행정을 맡은 베리야의 생산 관리자

«스탈린 동지, 당신은 적들에게 갇히셨지만, 나는 우리 편에게 갇혔습니다.»

바쿠 유전 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난 유대인 기술자 출신으로, 툴라 병기공장 책임자를 거쳐 1939년 무기인민위원이 되었다. 전쟁 직전 체포·고문당했으나 독일 침공 후 스탈린이 소환해 탄약인민위원으로 임명했고, 종전까지 포탄 생산을 4배로 끌어올렸다. 전후에는 쿠르차토프와 함께 제1총국을 이끌며 소련 원자폭탄 계획의 행정·공업 기반을 총괄했고, 수소폭탄 개발까지 관장했다. 세 차례 사회주의노동영웅 칭호를 받은 몇 안 되는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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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30년대방위산업과 병기 생산 행정에서 성장
  • 1941체포 직후 전쟁 발발로 석방되어 탄약 생산에 복귀
  • 1941–1945탄약인민위원, 포탄·탄약 대량생산 체계 지휘
  • 1945–1953제1총국에서 원자폭탄 계획 행정 담당
  • 1953 이후베리야 몰락 뒤에도 원자력 생산 행정 경험으로 생존

이반 표도로비치 테보샨

Иван Фёдорович Тевосян
소련 국가기관 소련 공산주의 소련 아제르바이잔 1902–1958 ○ 자연사

스탈린 공업화의 금속 관료

1930년, 28세 나이에 철금속 부문 책임자로 임명되자 오르조니키제에게 '공장에서 일하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책상보다 용광로를 택한 이 결정이 그를 소련 최고의 금속 전문가로 만들었다.

슈샤 출신 아르메니아인으로, 광산아카데미 졸업 후 엘렉트로스탈 공장에서 강철 생산을 익혔다. 특수강 트레스트 관리자로 두각을 드러내 방위공업·조선 인민위원부를 거쳐 1940년 철금속 인민위원이 되었다. 전시에는 남부·중부 금속공장을 우랄 너머로 대피시키고 탱크·항공기·탄약용 특수강 생산을 지휘해 1943년 사회주의노동영웅 칭호를 받았다. 전후 부수상 겸 철금속장관으로 재건을 이끌며 소련 원자력 계획의 우라늄 공급도 관리했다. 1938년 독일 연수 이력으로 '독일 스파이' 의심을 받았으나 스탈린의 개인적 개입으로 살아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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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20년대–1930년대금속공업과 중공업 행정에서 성장
  • 1939–1940조선공업 인민위원으로 군수 생산 기반 관리
  • 1940–1953철금속·조선·수송기계 분야를 오가며 전시 생산 관리
  • 1949–1956철금속공업 장관, 전후 중공업 재건에 관여
  • 1956–1958주일 대사로 이동, 생산 관료에서 외교직으로 전환

레프 다비도비치 란다우

Лев Давидович Ландау
소련 국가기관 소련 공산주의 소련 아제르바이잔 1908–1968 ○ 자연사

'란다우 학교'를 세우고 양자유체 역학을 개척한 소련 이론물리학의 거장

그는 물리학자를 성취도에 따라 로그 등급으로 분류하곤 했다. 1급은 보어, 하이젠베르크, 디랙. 아인슈타인은 0.5급이었다. 자신은 한때 2.5급에 두었다가, 나중에 1.5급으로 올렸다.

소련 이론물리학자. 엄격한 이론최소과목으로 제자를 선발하는 '란다우 학교'를 세웠고, 초유동체·페르미 액체 이론으로 응집물질물리학을 개척했다. 리프시츠와의 《이론물리학 강좌》는 세계적 교과서로 자리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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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32–1937우크라이나 물리기술연구소(UFTI) 이론부장 · 하르코프 대학 교수
  • 1937–1968모스크바 물리문제연구소(IFPAN) 이론부장
  • 1943–1947모스크바 국립대학교 저온물리학 교수
  • 1945–1953소련 원자력 프로젝트 참여 · 스탈린상 3회 수상
  • 1946소련 과학아카데미 정회원(академик) 선출
  • 1962노벨 물리학상 수상 '응집물질 이론, 특히 액체 헬륨의 선구적 연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