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0년 즈다노프의 강요로 에스토니아 괴뢰 정부의 총리가 되어 소련 편입을 청원한 시인·의사
비리얀디 근처의 농가에서 태어나 키예프에서 의학을 공부했고, 제1차 세계대전과 에스토니아 독립전쟁에서 군의관으로 복무했다. 뒤에 요하네스 바르바루스라는 필명의 이름난 시인이자 급진 사회주의자가 되었다. 1940년 6월 소련이 에스토니아를 점령하자 안드레이 즈다노프는 콘스탄틴 페츠 대통령에게 바레스를 괴뢰 정부의 총리로 임명하게 했고, 그는 모스크바에 가입 청원을 전한 대표단을 이끌었다. 이후 에스토니아 SSR 최고소비에트 상임간부회 의장을 지냈고, 1941년 독일군이 오자 소련 내지로 피했다. 1944년 돌아와 독립전쟁 시기 행적으로 NKVD의 조사를 받았고, 1946년 11월 탈린의 관저에서 숨졌다. 자살로 여겨지지만 살해설도 있다.
1943년 수용소 업무평가서는 그를 모범적인 행정십장으로 적고 수감 기간 3년 단축을 청원했다.
국경수비대 출신의 NKVD 여단장으로 1937년 4월부터 1938년 9월까지 국가보안총국 작전서기를 맡아 제00447호를 비롯한 예조프의 대숙청 작전명령 사본에 인증 서명을 했다. 프리놉스키의 심복으로 베리야 아래에서 한 달 비서실장을 지낸 뒤 1939년 체포되어 15년형을 받고 1945년 크라스노야르스크의 수용소에서 죽었다.
1944~1950년 에스토니아 공산당 제1서기, 1950년 「부르주아 민족주의자 비호」로 해임된 당 지도자
1901년 패르누 지방에서 태어나 1925년 네덜란드로 건너가 공산당에 들어갔고, 1926년 소련에 정착해 서방소수민족공산대학에서 공부했다. 1938년 대숙청 때 체포되었다가 기소 없이 풀려났다. 독일 점령기에는 사실상 에스토니아 공산당을 이끌며 에스토니아 파르티잔 운동 참모부장을 지냈고, 1944년 9월 28일 제1서기로 선출되었다. 섬멸대대 중앙참모부를 이끌었고, 1949년 3월 추방에 앞서 각 군의 전권위원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1950년 제8차 전원회의 뒤 해임되어 요한네스 캐빈으로 교체되었다. 이후 모스크바에서 경제학자로 일하며 1964년 박사 학위를 받았고, 캐빈과의 불화로 에스토니아에 돌아오지 못한 채 1969년 모스크바에서 숨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