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라루스인은 민족이 아니며, 그들을 러시아인과 구분짓는 민족지적 특성은 사라져야 한다» — 1918년 10월, 자신이 편집장으로 있던 『즈뱌즈다』 지면을 통해.
라트비아 출신 볼셰비키로, 벨라루스와 라트비아에서 당 조직을 건설했으며 1920년대 벨라루스 공산당 제1서기를 두 차례 역임했다. 코민테른 정보선전부장으로서 각국 공산당의 이념 노선을 조율했고, 역사-당 연구소 소장을 지내며 1935년 『소련 공산당 약사』를 저술했다. 이는 1938년 『볼셰비키당사 단기강좌』의 직접적 전신이다. 1937년 체포되어 이듬해 처형되었고 1955년 복권되었다.
1939년 소련–라트비아 상호원조조약에 서명하고 1940년 소련으로 추방된 라트비아 외무장관
리가에서 에스토니아인 상인 아버지와 발트 독일인 어머니 사이에 태어났고, 라트비아 독립전쟁 때 에스토니아군에서 복무했다. 1920년부터 외무부에서 일하며 1933년 사무총장이 되었고, 1934년 울마니스의 쿠데타 뒤 사실상 외무부를 이끌다 1936~1940년 외무장관을 지냈다. 1939년 6월 독일–라트비아 불가침조약에, 10월 5일 소련–라트비아 상호원조조약에 서명했다. 소련 점령 뒤 1940년 7월 내무장관 빌리스 라치스가 지켜보는 가운데 가족과 함께 보로네시로 추방되었고, 1941년 6월 체포되어 1952년 징역 25년을 선고받았다. 1954년 풀려나 1958년 라트비아로 돌아왔고, 해외 라트비아인 단체를 비난하는 글을 쓰다 1967년 숨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