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트비아 독립의 국제 승인을 얻어 낸 초대 외무장관
라트비아 공화국 초기의 가장 영향력 있는 정치가이자 외교관으로 초대 외무장관을 지내며 1920년 리가 강화, 1921년 법적 승인과 국제연맹 가입을 이끌었고, 1925년 자동차 사고로 죽었다.
라트비아의 초대 외무장관으로 1918년 영국의 사실상 승인, 1920년 리가 강화, 1921년 연합국의 법적 승인과 국제연맹 가입을 얻어 냈다. 총리도 지냈으며 1925년 교통사고로 서른여덟에 죽었다.
주요 활동과 소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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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8–1925
라트비아 국가기관외무장관대표
외교·국제활동
경력 연표
- 1917라트비아 농민연합 공동 창립자, 비제메 지방 토지위원회 재무부장
- 1918초대 외무장관 취임
- 1920소비에트 러시아와 리가 평화조약 체결
- 1921연합국의 법적 승인과 국제연맹 가입 성사
- 1921–1923총리 역임
- 1923–1924총리 재임
관련 역사 사건
혁명과 독립전쟁
리가 공업대학 출신의 은행원으로 1918년 라트비아 임시민족평의회의 대표로 런던에 파견되어 11월 11일 영국 외무장관 밸푸어에게서 사실상의 승인을 얻어 냈다. 독립 선포 뒤 초대 외무장관이 되어 파리 강화회의에서 연합국의 지지를 구했고, 독일 자유군단과 베르몬트군 문제에서 연합국 사절단을 움직여 독일군의 철수를 이끌어 냈다. 1920년 8월 소비에트 러시아와의 리가 강화와 1921년 1월 연합국의 법적 승인, 그해 9월 국제연맹 가입이 그의 외교의 결과였다. 1921년부터 1923년까지 총리를 겸했고 발트 3국과 핀란드, 폴란드의 협력 구상을 추진했다. 1925년 8월 교통사고로 서른여덟에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