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약과 원자력 행정을 맡은 베리야의 생산 관리자
«스탈린 동지, 당신은 적들에게 갇히셨지만, 나는 우리 편에게 갇혔습니다.»
바쿠 유전 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난 유대인 기술자 출신으로, 툴라 병기공장 책임자를 거쳐 1939년 무기인민위원이 되었다. 전쟁 직전 체포·고문당했으나 독일 침공 후 스탈린이 소환해 탄약인민위원으로 임명했고, 종전까지 포탄 생산을 4배로 끌어올렸다. 전후에는 쿠르차토프와 함께 제1총국을 이끌며 소련 원자폭탄 계획의 행정·공업 기반을 총괄했고, 수소폭탄 개발까지 관장했다. 세 차례 사회주의노동영웅 칭호를 받은 몇 안 되는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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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30년대방위산업과 병기 생산 행정에서 성장
- 1941체포 직후 전쟁 발발로 석방되어 탄약 생산에 복귀
- 1941–1945탄약인민위원, 포탄·탄약 대량생산 체계 지휘
- 1945–1953제1총국에서 원자폭탄 계획 행정 담당
- 1953 이후베리야 몰락 뒤에도 원자력 생산 행정 경험으로 생존
스탈린 공업화의 금속 관료
1930년, 28세 나이에 철금속 부문 책임자로 임명되자 오르조니키제에게 '공장에서 일하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책상보다 용광로를 택한 이 결정이 그를 소련 최고의 금속 전문가로 만들었다.
슈샤 출신 아르메니아인으로, 광산아카데미 졸업 후 엘렉트로스탈 공장에서 강철 생산을 익혔다. 특수강 트레스트 관리자로 두각을 드러내 방위공업·조선 인민위원부를 거쳐 1940년 철금속 인민위원이 되었다. 전시에는 남부·중부 금속공장을 우랄 너머로 대피시키고 탱크·항공기·탄약용 특수강 생산을 지휘해 1943년 사회주의노동영웅 칭호를 받았다. 전후 부수상 겸 철금속장관으로 재건을 이끌며 소련 원자력 계획의 우라늄 공급도 관리했다. 1938년 독일 연수 이력으로 '독일 스파이' 의심을 받았으나 스탈린의 개인적 개입으로 살아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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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20년대–1930년대금속공업과 중공업 행정에서 성장
- 1939–1940조선공업 인민위원으로 군수 생산 기반 관리
- 1940–1953철금속·조선·수송기계 분야를 오가며 전시 생산 관리
- 1949–1956철금속공업 장관, 전후 중공업 재건에 관여
- 1956–1958주일 대사로 이동, 생산 관료에서 외교직으로 전환
바쿠 유전에서 시작해 소련 가스 산업을 세계 최대로 키운 아제르바이잔인 공학자
1973년, 우렌고이 예정지의 맨땅에 내린 오루제프가 말했다. "나는 표트르 대제가 아니지만 그의 말을 빌리겠소. 여기에 도시가 세워질 것이오." 이 한마디에서 오늘날 '러시아의 가스 수도' 노비 우렌고이가 시작되었다.
바쿠 노동자 가정 출신으로 소련 가스 산업을 세계 최대로 키운 아제르바이잔인 공학자. 1972년 가스공업부 장관에 취임해 서시베리아 우렌고이·메드베지예 초거대 가스전을 개발하고 통합가스공급시스템(ЕСГ)을 구축했으며, 이 시스템은 오늘날까지 러시아 가스 산업의 골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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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36–1939오르조니키제네프티 트러스트 기계공, 작업반장
- 1939–1946아즈네프티 계열 트러스트 관리자·트러스트장
- 1946–1949크라스노다르네프티 주임기사, 아즈네프테라즈베드카 청장
- 1949–1955소련 석유공업부 해양·서부지역 총국장
- 1955–1957소련 석유공업부 차관
- 1957–1959아제르바이잔 SSR 인민경제회의 의장·각료회의 부의장
- 1965–1972소련 석유채취공업부 제1차관
- 1972–1981소련 가스공업부 장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