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 съезд кинематографистов СССР · 1986년 5월 13–15일

제5차 소비에트 영화인대회

5th Congress of the USSR Union of Cinematographers

1986년 5월 13일부터 15일까지 모스크바 대크렘린궁에서 열린 소비에트 영화인동맹 제5차 대회. 알렉산드르 야코블레프의 승인 아래 텡기즈 아불라제의 반(反)스탈린주의 영화 「참회」가 상영되었으며, 기존 지도부 전원이 투표에서 탈락하고 엘렘 클리모프가 제1서기로 선출되면서 영화 검열의 실질적 종식을 가져온 문화적 글라스노스트의 분수령이다.

상세

배경

1985년 미하일 고르바초프의 집권 이후 글라스노스트의 기운이 감돌았으나, 영화계에는 여전히 당의 검열과 소비에트 영화인동맹의 노멘클라투라 체제가 군림하고 있었다. 1986년 4월, 모스크바 비평가 분과 회의에서 키노베트 빅토르 보조비치가 당이 추천한 명단 외 후보를 제안하면서 연쇄반응이 시작되었다. 각 전문 분과에서 비밀투표가 실시되었고, 세르게이 본다르추크, 스타니슬라프 로스토츠키, 그리고 동맹 의장 레프 쿨리자노프를 포함한 기존 지도부 상당수가 대의원 선출에서 탈락했다.

대회 경과

볼쇼이 크렘린궁에서 개막한 대회는 표면적으로 일상적인 보고로 시작했으나, 곧 소비에트 영화의 위기에 대한 격렬한 토론으로 전환되었다. 롤란 비코프, 블라디미르 멘쇼프, 안드레이 플라호프 등이 검열과 행정명령식 제작을 신랄히 비판했고, 니키타 미할코프는 본다르추크에 대한 공격을 '유치한 짓'이라 반박했다. 클리모프의 주선과 알렉산드르 야코블레프의 승인으로 1984년 제작 후 봉쇄되어 있던 텡기즈 아불라제의 「참회」가 대회에서 상영되었고, 이 영화는 페레스트로이카의 상징이 되었다.

결과

밤샘 투표 끝에 구(舊) 지도부 전원이 새 이사진에서 배제되고 엘렘 클리모프가 제1서기로 선출되었다. 대회는 사실상 당의 사전검열을 폐기했으며, 이후 약 250편의 봉쇄 영화가 해금되고 다른 창작동맹에도 민주적 선거의 선례가 되었다. '페레스트로이카의 리허설'로 불리는 이 사건은 소비에트 문화사의 결정적 전환점으로 평가된다.

관련 역사 사건

출처

  1. 위키백과 (러시아어) Russian Wikipedia article on the congress: dates, delegate elections, Klimov election, old-guard purge, 'revolutionary' label
  2. kinoart.ru Andrei Plakhov's firsthand account in Iskusstvo Kino: Bozhovich's spark, delegate elections, Repentance screening, Klimov as 'Plan B,' overnight vote, ~250 shelved films liberated
  3. moskvichmag.ru Moskvich Mag article: Yakovlev's authorization for Repentance, Shevardnadze role, Kulidzhanov nickname 'Sleeping Lion,' V. Vorotnikov diary entry, censorship abolition
  4. 위키백과 (영문) confirms 13 May 1986 date for the 5th congress of the Union of Cinematograph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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