Первый Всероссийский мусульманский съезд · 1917

전러시아 무슬림 대회 (1917)

All-Russian Muslim Congress (1917)

1917년 5월 1~11일 모스크바에서 열린 러시아 무슬림의 전국 대회. 2월 혁명 뒤 캅카스·크림·카자흐 초원·투르키스탄·중부 러시아와 시베리아 등지에서 900명 넘는 대의원이 모여, 러시아를 민족·영토·연방 원리의 민주공화국으로 만들자는 결의를 446 대 271로 채택하고, 일부다처 금지와 여성 선거권을 의결했으며, 상설 기관으로 전러시아 무슬림 협의회를 세웠다.

상세

러시아 무슬림의 조직된 정치는 1905년 혁명에서 시작되었다. 그해 8월 니즈니노브고로드의 첫 무슬림 대회가 타타르 중심의 정당 「이티파크 알무슬리민」(러시아 무슬림 연합)을 세웠고, 이 당은 입헌민주당과 가까웠다. 지도자들은 1906년 4월 국가 두마에 들어가 네 차례 두마 내내 무슬림 의원단을 꾸렸으며, 당과 의원단은 볼가-우랄의 자디드 운동에서 큰 영향을 받았다. 1917년 2월 혁명 뒤 러시아 임시정부가 모든 시민의 평등을 선언하자, 러시아의 모든 투르크인과 무슬림이 참여하는 총회로 이 대회가 소집되었다. 대회는 아제르바이잔 자선가 샴시 아사둘라예프가 모스크바 무슬림에게 기증한 건물에서 열렸다. 정치 위원회·자선 단체·문화 기관·협동조합·무슬림 군사위원회·학생 연합 등에서 뽑힌 900명 넘는 대의원 가운데 300명이 성직자, 112명이 여성이었다. 아흐메드 찰리코프, 아야즈 이스하키, 아흐메트제키 발리디, 마메드 아민 라술자데, 무사 비기예프 등이 참석했고, 러시아어 출처에 따르면 자페르 세이다흐메트도 대회에 참가했다. 볼셰비키를 뺀 입헌민주당·사회혁명당·멘셰비키 등 모든 정당과 좌파 분파가 대표를 보냈고, 대회는 국가 구조·노동·농업·여성·제헌의회 선거·군사·종교·교육·지방 행정의 아홉 분과로 나뉘어 일했다.

가장 큰 쟁점은 러시아의 국가 형태였다. 볼가-우랄 무슬림은 러시아 무슬림 전체의 단일한 종교 자치와 공동 대표 기관, 그리고 민족·문화 자치를 원했고, 북캅카스 산악민 지도자들은 영토 자치를, 아제르바이잔 대표들은 러시아를 연방 공화국으로 바꾸는 것을 내세웠다. 표결에서 라술자데의 연방안이 446 대 271로 채택되었고, 결의는 일정한 영토가 없는 민족에게는 민족·문화 자결을, 러시아 무슬림의 종교·문화 문제에는 입법권 있는 중앙 기관을 두기로 했다. 노동 문제에서는 8시간 노동제, 주 42시간 연속 휴식, 아동 노동 금지 등 좌파 정당의 요구가 채택되었고, 농업 문제는 제헌의회로 미뤘다. 다수결로 일부다처와 신부값, 어린 소녀의 결혼을 금지하고 여성의 선거권·피선거권과 복장의 자유를 인정했으며, 이에 항의하는 226명의 서명이 의장단에 제출되었다. 군사 분과는 무슬림 부대 창설과 출신 지역 복무를 결정했다. 대회는 처음으로 황제의 임명이 아닌 선거로 무프티(알림잔 바루디)를 뽑았고, 카디 6명 가운데 한 사람으로 여성 무흘리사 부비를 뽑았다. 5월 11일 세워진 전러시아 무슬림 협의회는 30명으로 구성되었는데, 영어 출처는 이스하키를 협의회 의장으로, 러시아어 출처는 찰리코프를 12인 집행위원회 의장으로 적는다. 협의회 해산 시점도 영어 출처는 1918년 3월, 러시아어 출처는 1918년 5월 23일로 다르다.

관련 인물

관련 역사 사건

출처

  1. 위키백과 (영문)
  2. 위키백과 (러시아어)
  3. 위키백과 (러시아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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