Тихий Дон (Михаил Шолохов, 1928–1940) · 1928–1940

고요한 돈강

And Quiet Flows the Don

미하일 숄로호프의 네 권짜리 대하소설(1928~1940). 돈 카자크 그리고리 멜레호프가 제1차 세계대전과 혁명, 내전 속에서 적군과 백군 사이를 오가다 모든 것을 잃는 이야기다. 1941년 스탈린상을 받았고, 숄로호프는 1965년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 표절 의혹이 오래 따라다녔으나 그 뒤 발견된 원고와 통계 분석은 숄로호프의 저작임을 뒷받침한다.

상세

무슨 이야기인가?

소설은 돈강 변 타타르스키 마을의 전설 같은 장면으로 시작한다. 터키 전쟁에서 돌아온 프로코피 멜레호프가 터키 여인을 아내로 데려오자 카자크들이 마녀라며 린치를 가하려 하고, 그는 칼을 빼 든다. 여인은 그날 저녁 죽고, 아기만 살아남는다. 그 손자가 이 소설의 주인공, 터키인의 얼굴을 물려받은 그리고리 멜레호프다.

그리고리는 이웃 스테판의 아내 아크시냐와 공공연한 정을 통한다. 집안에서 끊어 놓으려고 나탈리야 코르슈노바와 결혼을 시키지만 그는 아버지에게 “내가 결혼한 게 아니라 아버지들이 시킨 겁니다”라고 말하고, 결국 아크시냐와 함께 집을 나가 지주의 영지에서 일한다. 절망한 나탈리야는 낫으로 제 목을 그었다가 살아남는다.

1914년 전쟁이 나고 그리고리는 게오르기 십자 훈장을 받는 용사가 된다. 그러나 혁명이 일어나자 어디에 서야 할지 알 수 없다. 적위대에 들어가 싸우지만 포드툘코프가 포로 체르네초프를 처형하는 것을 보고 마음이 식는다. 1918년 말 적군이 마을에 들어와 옛 장교들을 총살한다는 소문이 돌자 그는 도망쳐 숨고, 1919년 봄 뵤셴스카야 봉기가 터지자 반란군 사단장이 된다. 형 표트르는 볼셰비키 편으로 넘어간 동네 친구 미시카 코셰보이의 손에 죽는다. 그리고리는 이제 포로를 살려 두기 싫어하고, 승리는 그를 술독으로 끌고 간다.

온 집안이 무너진다. 형수 다리야는 포로로 잡힌 공산주의자를 직접 쏘고 메달까지 받지만 병을 얻어 돈강에 몸을 던지고, 나탈리야는 잘못된 낙태로 죽으며, 아버지는 피난길에 티푸스로 죽는다. 표트르를 죽인 코셰보이는 돌아와 그리고리의 누이와 결혼하고 마을 혁명위원회 의장이 된다. 부됸니의 기병대에서 복무하다 돌아온 그리고리에게 마을은 더 이상 자리를 내주지 않는다. 그는 쫓겨 포민의 패거리에 들었다가 빠져나와 몰래 아크시냐를 데리고 달아나지만, 치르강 변에서 식량 징발대의 총에 그가 죽는다. 초원을 떠돌던 그리고리는 소총과 권총을 강물에 던지고 마을로 돌아와 아들 미샤트카를 만난다. 이것이 소설의 끝이다. 그 뒤 그가 어떻게 될지는 말하지 않는다.

왜 그렇게 유명한가?

주인공이 혁명의 편이 아니기 때문이다. 멜레호프는 볼셰비키로 거듭나지 않는다. 숄로호프는 양쪽의 잔인함을 다 쓴다. 카자크가 폴란드인 하녀를 윤간하는 장면, 처형당하는 포로들, 양쪽의 징벌대가 소설에 그대로 나온다. 그래서 소련 비평가들은 이 책이 은근히 백군에 호의적이라고 의심했고, 반대로 망명지의 블라디슬라프 호다세비치와 니나 베르베로바는 그런 공격에서 숄로호프를 변호했다. 내전의 현장이던 돈 지방을 카자크의 눈으로 들여다볼 수 있는 드문 소설이고, 이 배경은 탈카자크화 정책과 맞닿아 있다.

어떻게 출판될 수 있었나?

숄로호프는 1925년에 시작했다가 접고, 1926년 11월 뵤셴스카야에서 다시 썼다. 첫 권들이 1928년부터 잡지 『10월』에 실렸는데, 뵤셴스카야 봉기를 그린 3권이 큰 고비였다. 1929년 봄에 연재가 끊긴 것은 흔히 편집부의 정치적 결정으로 알려졌지만, 연구자 게르만 예르몰라예프는 숄로호프의 편지를 들어 아직 후속 원고를 끝내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진짜 충돌은 그 뒤에 왔다. 편집부는 원고를 받아 주지 않았고, 고리키가 삭제 없이 싣자고 권했는데도 소용이 없었다. 숄로호프 자신의 회고에 따르면 1931년 7월 고리키의 별장에서 만난 스탈린이 “3권의 묘사는 우리에게, 혁명에 유리하다”고 말했고, 1932년 1월 연재가 재개되었다. 이 과정에서 그는 적군을 더 좋게 그리고 대립을 계급 문제로 옮기는 수정을 했고, 1933년판에서 앞 권들까지 검열을 받았다.

끝 권은 대숙청 한복판에서 쓰였다. 숄로호프는 스탈린에게 보낸 편지에서 5년 동안 반 권을 겨우 썼다고 호소했다. 로스토프 내무인민위원부가 자기를 카자크 봉기의 우두머리로 몰아가는 사건을 만들고 있음을 알자 그는 모스크바로 달려가 스탈린을 만났고, 정치국원들과 니콜라이 예조프까지 나온 조사 자리에서 그것이 도발임을 입증했다. 소설은 1940년에 끝났다.

정말 숄로호프가 썼나?

이 소설을 둘러싼 가장 오랜 논쟁이다. 표절 소문은 이미 1929년에 퍼졌다. 22세 안팎의 신인이, 이렇게 짧은 시간에, 이렇게 성숙한 소설을 쓸 수 있느냐는 의심이었고, 작자로 흔히 거론된 사람은 카자크 작가 표도르 크류코프다. 『프라우다』는 1929년 3월 29일 세라피모비치, 파데예프 등의 서한을 실어 숄로호프를 옹호했다. 솔제니친도 뒤에 공개적으로 의혹을 제기했다. 첫 권의 수준을 평생 다시는 보여 주지 못했다는 것이 그의 논거다.

하지만 확인된 증거는 다른 쪽을 가리킨다. 1984년 게이르 혜트쇠의 컴퓨터 분석은 표절의 흔적을 찾지 못했다. 1999년에는 분실된 줄 알았던 1·2권 원고가 발견되어 필적·문헌 감정을 거쳤고 2005년에 영인본이 나왔다. 2007년 닐스 효르트의 문장 길이 통계, 2016년 세르게이 니콜라예프의 방언 어휘 비교, 2019년 보리스 오레호프와 나탈리야 벨리카노바의 문체 측정도 모두 숄로호프의 손을 지지했다. 아직 의심하는 연구자가 있지만, 그것은 의혹이고 증거는 숄로호프 쪽에 있다. 나이에 대한 의심도 그 시대를 보면 약해진다. 파데예프도 바벨도 젊은 나이에 대표작을 썼다.

영상으로 찾아본다면?

영상으로는 올가 프레오브라젠스카야와 이반 프라보프의 1930년 영화, 세르게이 게라시모프의 1958년판, 세르게이 본다르추크의 2006년판, 세르게이 우르술랴크의 2015년판이 있다. 영어 번역의 첫 책은 1934년에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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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1. 위키백과 (러시아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