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권위주의 인터내셔널
Anti-authoritarian International
1872년 헤이그 대회에서 바쿠닌 제명에 반발한 연합체들이 스위스 생티미에에 모여 결성한 국제 조직. 스스로는 자신들이 국제노동자협회의 정통이라고 주장했다. 총평의회 같은 중앙 기구를 부정하고 각 연합체의 완전한 자율을 원칙으로 삼았으며, 정치투쟁과 정당 결성 대신 경제적 직접행동을 내세웠다. 1877년 베르비에 대회를 끝으로 활동이 멎었지만, 그 흐름은 이후 아나키즘과 생디칼리슴 운동으로 이어졌다.
상세
왜 따로 모였나
1872년 9월, 헤이그 대회가 끝난 지 며칠 만에 스위스 쥐라 연합의 주도로 이탈리아, 스페인, 프랑스, 미국의 대의원들이 생티미에에 모였다. 이들은 헤이그 대회의 결의, 곧 바쿠닌의 제명과 정치투쟁의 의무화를 무효라고 선언했다. 명분은 두 가지였다. 총평의회가 대회를 조작해 특정 노선을 강요했다는 것, 그리고 애초에 협회는 연합체들의 자유로운 연맹이지 위계 조직이 아니라는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이들이 새 조직을 만든다고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자신들이야말로 국제노동자협회의 정통 계승자라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었고, 실제로 벨기에, 네덜란드, 영국의 일부 조직까지 합치면 마르크스파 쪽보다 회원 기반이 넓었다.
무엇을 주장했나
생티미에 결의는 이후 아나키즘 운동의 강령적 기초가 되었다. 프롤레타리아트의 어떤 정치권력 장악도 새로운 지배의 시작일 뿐이며, 노동자의 과제는 국가를 장악하는 것이 아니라 파괴하는 것이라는 주장이다. 수단으로는 정당과 선거 대신 파업과 봉기 같은 경제적 직접행동을 내세웠다. 조직 원리도 이를 반영해, 구속력 있는 중앙 결의 없이 각 연합체의 자율과 자유로운 협정만으로 움직였다.
어떻게 되었고 무엇이 되었나
조직은 오래가지 못했다. 1873년에서 1877년까지 대회가 이어졌지만, 스페인에서의 탄압, 이탈리아 봉기 시도의 실패, 쥐라 연합의 쇠퇴가 겹치며 1877년 베르비에 대회를 끝으로 활동이 멎었다. 그러나 조직의 소멸이 흐름의 소멸은 아니었다. 여기서 형성된 반정치주의적 노동자 운동은 프랑스와 스페인의 생디칼리슴, 특히 스페인 CNT로 이어졌고, 1922년 베를린에서 아나르코생디칼리슴 국제노동자협회로 다시 국제 조직을 얻었다. 사회주의 운동사에서 이 계보는 마르크스주의 계열과는 별도의 흐름으로, 국가와 정당에 대한 근본적 불신이라는 자기 정체성을 유지해 왔다.
관련 용어
관련 인물
출처
- René Berthier, Social Democracy and Anarchism in the International Workers' Association 1864–1877 (Merlin Press, 2015)
- 마르크스주의 인터넷 아카이브 Resolutions of the St. Imier Congress
- Encyclopaedia Britannica: anarchism (the First International and its aftermat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