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제르바이잔 인민전선당
Azerbaijani Popular Front Party
1989년 7월 창립된 아제르바이잔 인민전선을 모체로 1995년 정당으로 전환한 아제르바이잔의 정치 조직. 소련으로부터의 독립과 민주화를 내건 민족해방운동을 이끌었고, 1992년 의장 아불파즈 엘치베이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1993년 정변으로 엘치베이가 실각한 뒤에는 헤이다르 알리예프·일함 알리예프 정권에 맞선 주요 야당이 되었다.
상세
아제르바이잔어 출처에 따르면 인민전선을 만들자는 발상은 발트 지역에서 왔다. 1988년 여름 바쿠 학자 클럽에 모인 지식인들이 발트 인민전선을 본뜬 발기 그룹을 만들었고, 1989년 7월 16일 창립 회의에서 엘치베이가 의장으로 선출되었다. 인민전선은 1989년 10월 5일 아제르바이잔 SSR 각료회의 결정으로 국가 등록을 받았다. 영어 출처에 따르면 인민전선은 1980년대의 여러 비공식 단체를 통합해 대규모 시위를 벌였고, 1989년 아르메니아에 대한 철도 봉쇄를 시작했다.
영어 출처에 따르면 인민전선은 독립 뒤 첫 대통령 아야즈 무탈리보프를 압박해 1992년 물러나게 했고, 같은 해 엘치베이가 대통령 선거에서 이겼다. 엘치베이 정부 아래 정당법·언론자유법 등이 제정되고 국가 통화 마나트가 도입되었으며, 1993년 4월 러시아군이 철수했다. 아제르바이잔어 출처에 따르면 1993년 6월 4일 간자 반란 뒤 엘치베이는 수도를 떠나 고향 켈레키로 갔고, 대통령 권한은 헤이다르 알리예프에게 넘어갔다.
1995년 의회 선거에 사회단체의 참여가 허용되지 않자 「유르드」 출신의 「개혁파」가 정당화를 추진했고, 1995년 5월 25일 대회에서 인민전선은 아제르바이잔 인민전선당으로 전환해 9월 1일 법무부에 등록되었다. 같은 해 선거에서 당은 비례대표 득표율 9.6%를 얻었다. 당 안에서는 알리 케림리가 이끄는 「개혁파」와 「고전파」가 맞섰고, 2000년 7월 엘치베이가 앙카라에서 죽은 뒤 당은 사실상 둘로 갈라졌다.
2000~2001년 두 분파는 각각 대회를 열어 따로 의장을 뽑았고, 케림리는 2001년 의장에 선출되었다. 영어 출처는 1993년 정변 이후 당이 여러 선거에서 배제되거나 선거를 거부했고, 당과 관련된 인물들이 알리예프 부자 정부의 탄압을 받았다고 적는다. 아제르바이잔어 출처에 따르면 당은 2006년 당사를 잃은 뒤 사실상 당사 없이 활동하고 있으며, 2023년 7월 법무부는 당의 등록 관련 신청에 부정적인 답을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