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키즘
Chekism
국가보안기관이 사회의 모든 영역을 장악한 소련형 방첩국가의 형태이자 그것을 정당화한 이데올로기. 체카에서 이름을 따왔으며, 국가보안기관 요원이 민간 통제 없이 고위 정치직을 겸하는 상황을 함께 가리킨다. 1950년 망명 소비에트학자 압두라흐만 아프토르하노프가 러시아어 망명지에서 처음 정의했고, 그는 이를 국가나 당의 비밀경찰이 아니라 개별 정보원에 이르기까지 관통하는 단일한 힘으로 규정했다. 1992년 마지막 KGB 의장 바딤 바카틴은 체키즘의 전통이 '이데올로기로서' 근절되어야 한다고 선언해 이 말을 널리 알렸다.
상세
어원과 초기사
체키즘(러시아어 чекизм)은 1917년 12월 20일(구력 12월 7일) 러시아 소비에트 연방사회주의 공화국 인민위원회가 펠릭스 제르진스키를 수장으로 세운 전러시아 비상위원회, 곧 체카(ЧК)에서 이름을 얻었다. 1922년 2월 체카가 해산된 뒤에도 그 후속 기관의 요원들은 체카·GPU·OGPU·NKVD·GUGB·NKGB·MGB·MVD, 그리고 가장 오래 존속한 KGB에 이르기까지 스스로를, 또 일반 대중에게서 '체키스트'라 불렸다. 개념이 딛고 선 것은 바로 이 자기 규정과 계보의 연속성이다.
체카의 탄압 자체는 문서로 남은 사실이다. 체카는 적색 테러기에 재판 없이 대규모 체포·구금·고문·처형을 감행했고, 그 처형자 수는 최소 5만 명에서 최대 20만 명까지로 추산되며 연구자마다 편차가 크다. 체키즘을 이 기관들의 제도문화이자 이데올로기로 서술하는 것은 이 실천에서 출발한다.
체키즘을 낳은 실천과 교리는 기관의 첫 수장 제르진스키에게서 나왔다. 그가 세운 규범은 요원들이 탄압을 정당하고 필요하며 낭만적인 것으로 여기도록 이끌었다. 1950년 망명 소비에트학자 압두라흐만 아프토르하노프는 러시아어 망명지에 이 용어를 처음 정의하며 소련 비밀경찰을 스탈린 독재의 핵심 구조로 지목했고, 체키즘은 국가나 당의 비밀경찰, 혹은 '국가 속의 국가'가 아니라 국가와 당에서 개별 정보원에 이르기까지 관통하는 단일한 보편적 힘이라고 규정했다.
바카틴의 선언과 그 성격
1992년 회고록에서 바카틴은 체키즘을 10월 혁명 이후의 탄압 체계에 뿌리내린 것으로 설명하며, 체카가 당의 승인 아래 자체 재량으로 체포·수사·판결·처형과 '인질' 대량 총살을 집행해 테러와 무법을 국가 정책으로 끌어올렸다고 주장했다. 이는 참여자의 정치적으로 무거운 규정이므로 사이트의 목소리가 아니라 그에게 귀속시켜야 한다. 그는 또 체키즘에 영구적인 적이 필요하다고 보았고, 그것을 '비밀기관의 이데올로기가 법이 아니라 지배당의 이데올로기와 완전히 합병한 것'으로 정의했다.
러시아에서의 계속과 적용
이 용어는 동유럽 다른 국가보안기관에도 적용된다. 동독의 오랜 보안 수장 에리히 밀케는 스스로를 체키스트라 부르기를 좋아했다. 소련 붕괴 뒤에는 KGB·FSB 출신의 정치·경제적 역할을 가리키는 말로 확장되었다. 러시아 국가두마 의원 콘스탄틴 보로보이는 푸틴의 취임을 두고 'KGB의 권력 원정의 정점'이라 불렀다. 사회학자 올가 크리스타놉스카야의 연구는 러시아의 주요 정치 인물 1,016명 가운데 최대 78%가 KGB나 FSB 계열 조직 출신이라고 집계했고, 이들이 보안 부문에서 기업·정당·비정부기구·지역 정부·문화로 퍼졌다고 서술했다. 체키즘을 러시아의 '마피아크라시'를 낳은 것으로, 체키스트가 스스로를 지배계급으로 인식한다고 보는 서술도 있다.
구분과 논쟁
'체키스트'라는 말과 기관 이름은 구분된다. 체카 성원을 체키스트라 불렀고, 공식 명칭이 여러 번 바뀌는 동안에도 이 말은 소련 시기 내내 비밀경찰을 가리켰다. 솔제니친의 회고에 따르면 수용소 수감자들은 경험 많은 수용소 관리자를 '늙은 체키스트'라 부르며 특별한 존중을 표했다. 이는 이데올로기를 가리키는 용어와는 다른 용법이다.
현대 체키즘을 둘러싼 규정은 갈린다. 푸틴의 전 고문 안드레이 일라리오노프는 이를 정보기관 협력자의 결사, 곧 'KSSS'라는 새로운 조합주의로 규정하며 옴에르타에 가까운 규율과 권리의 선별적 적용('나시즘')을 특징으로 든다. 정치학자 스타니슬라프 벨코프스키는 체키즘을 공격적 반미주의를 포함하는 '제국 이데올로기'로 정의한다. 이들은 모두 채택된 정의가 아니라 귀속시켜야 할 논쟁적 분석이다. 예브게니야 알바츠는 초기 체키스트들의 폭력과 제르진스키의 유산을 자처하는 오늘날 요원들의 자부심을 규탄했다. 반대로 러시아 마약단속국장 빅토르 체르케소프는 체키즘을 소련 붕괴 후 사회가 흩어지지 않게 붙잡아 둔 '갈고리'라 부르며 체키스트들이 뭉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체키스트 이데올로기를 당사자의 언어로 보여 주는 사례다.
체키스트 가치는 소련 체제에 대한 무조건적 충성과 외부·내부 적대자로부터의 방어를 뜻하며, KGB 자체의 교육 체계에서 조직적으로 길러졌다. 그 정점은 모스크바의 제르진스키 고등학교였다. 이데올로기는 1984년까지도 간부 양성에서 능동적으로 재생산되고 있었다. 같은 해 12월 리투아니아 KGB 문서 「국가보안국 청년 장교 개별 훈련 계획」은 정식 체키스트 교육을 받지 않은 신임 장교를 이론 주제와 실무 평가로 훈련시키는 과정을 보여 준다. 이 계획은 관리자들의 '정기 대화'에서 '영광스러운 체키스트 전시·전후 전통'을 언급하고, 격월간지 『스보르니크』와 소설·영화를 활용해 이상화된 체키스트 모범으로 충성을 빚어내도록 지시했다.
관련 인물
출처
- 위키백과 (영문) Comprehensive article covering the term's origin with Avtorkhanov (1950), Bakatin's usage, the ideological content of Chekism, and its application to post-Soviet Russia.
- wilsoncenter.org Wilson Center analysis of a 1984 Lithuanian KGB training document, showing how 'Chekist traditions' and 'Chekist values' were systematically cultivated in KGB officer education as late as the 1980s.
- 위키백과 (영문)
- wilsoncenter.org
- 위키백과 (영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