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ido Demócrata Cristiano · 1957.07–현재 (창당일은 1957년 7월 27일 또는 28일로 전한다.)

칠레 기독민주당

Christian Democratic Party of Chile

가톨릭 사회교리에 기댄 칠레의 중도 정당. 보수당에서 갈라져 나온 팔랑헤 나시오날과 사회기독교 보수당이 1957년 합쳐 만들었다. 1964년 에두아르도 프레이 몬탈바가 「자유 속의 혁명」을 내걸고 대통령이 되어 농지개혁과 구리의 칠레화를 추진했다. 1970년 대선 뒤 의회에서 아옌데의 당선을 확정해 주었으나, 이후 우파 국민당과 손잡고 인민연합 정부에 맞섰고 1973년 쿠데타를 지지했다. 군정기에는 반대파로 돌아섰다.

상세

기독민주당의 뿌리는 1930년대 보수당 청년층이다. 이들은 1935년 사회 개혁을 앞세운 팔랑헤 나시오날로 갈라져 나왔고, 1957년 다른 사회기독교 세력과 합쳐 프레이를 대통령 후보로 내세우려 기독민주당을 세웠다. 1964년 대선에서 프레이는 우파 정당들과 미국 중앙정보국의 비밀 지원까지 받아 56%로 당선되었다. 그의 정부는 농지개혁법(1967)과 구리 광산 지분 51% 매입, 농촌 노조 합법화를 추진해 중도에서 개혁을 이끄는 「제3의 길」을 내세웠다.

1970년 대선에서는 당 좌파의 라도미로 토미치가 아옌데와 거의 같은 국유화·농지개혁 공약을 들고 나와 3위에 그쳤다. 의회 결선에서 기독민주당은 아옌데가 「헌법 보장 규정」에 서명하는 조건으로 그에게 표를 주었다. 1971년 구리 국유화 헌법 개정에도 찬성했다.

그러나 1971년 이후 당은 인민연합과 갈라섰다. 1972년 국민당과 「민주주의 연합(CODE)」을 만들었고, 1973년 3월 총선 뒤 상원의장 프레이가 야당을 이끌었다. 8월 22일 하원이 정부의 위헌을 선언하고 군에 호소한 결의는 기독민주당과 국민당의 표로 통과되었고, 당 지도부는 쿠데타를 지지했다. 그해 11월 프레이는 국제 기독민주당 조직에 쿠데타를 정당화하는 편지를 보냈다. 당내에서 베르나르도 레이턴 등 소수는 처음부터 쿠데타를 비판했다. 군정이 정당 활동을 금지하자 당은 점차 반대파로 돌아섰고, 1990년 민정 이양 뒤 파트리시오 아일윈이 대통령이 되었다.

소속 인물

관련 인물

관련 역사 사건

출처

  1. 위키백과 (영문)
  2. es.wikipedia.org
  3. 위키백과 (영문)
  4. archive.org
  5. 위키백과 (영문)
  6. 위키백과 (영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