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족주의
Clanism
당 규정이 아니라 출신지·경력지의 공통성(젬랴체스트보)을 원리로 삼아 형성된 비공식 정치집단을 가리키는 사학사적 개념. 당의 공식 절차보다 후견인 네트워크에 대한 개인적 충성이 작동 원리이며, 공식적인 목록 기반 간부 심사 제도인 노멘클라투라와는 구별된다. 러시아어 문헌은 이런 집단을 '클란'(клан)이라 부르고, '씨족주의'·'clanism'이라는 대응어는 자기 명칭이 아니라 사학사적 관례다. 소련의 사례는 혈연·부족 조직이 아니며 그와 혼동해 쓰지 않는다.
상세
개념의 성격
소련사 서술에서 '씨족주의'는 정식 당 기구가 아니라 출신지와 경력 경로를 매개로 결합한 비공식 집단을 지칭한다. 러시아어 문헌은 이런 집단을 일반적으로 '클란'(клан)이라 부르며, 드네프로페트로우시크 클란·도네츠크 클란 같은 사례가 그렇게 명명된다. 위키백과 밖의 다른 서술도 정치 클랜이 출신·동향·군 복무를 매개로 형성되어 상호 원조로 승진했다고 적는다.
개념은 노멘클라투라와 구별된다. 노멘클라투라는 핵심 직위 목록과 그 후보자 명단, 두 개의 공식 목록을 통해 당 기관이 임명을 승인하던 체계였고, 씨족주의는 그 공식 체계를 통과하고 그 옆에서 작동한 비공식적 후견 유대를 가리킨다. 스탈린이 당의 후견 체계를 구축해 자신의 측근을 당 관료제 전반에 배치했다는 서술은 이 후견 계보를 보여 준다.
영어의 'clanism'은 중앙아시아의 친족·지역 연대 조직을 가리키는 데도 쓰이므로, 소련 당 후견 정치라는 지시 대상과 구별해 읽어야 한다.
물적 기반과 전성기
소련에서 클랜 형성의 경제적 기반은 군수산업 복합체에 집중된 자원 흐름에 대한 통제였다. 남부 기계제작공장(유즈마시) 같은 거점에 대한 근접성이 처음에는 지역 당 조직 단위로 집단을 구별 짓는 요인이었다. 소련 해체 이후에는 구 당 노멘클라투라 출신들이 민영화의 주요 수혜자가 되면서 드네프로페트로우시크 클란은 과두집단으로 바뀌었다.
이 현상의 전성기는 브레즈네프의 '정체' 시기였다. 드네프로페트로우시크에서 당 경력을 쌓은 브레즈네프와 셰르비츠키는 클란의 '창시자'로 불리고, 정치국 고위 위원 여럿이 여기에 속했다. 정체 시기 소련과 우크라이나 최고 지도부의 상당 부분이 드네프로페트로우시크 출신이거나 경력의 일부를 그곳에서 보냈다. 미국 소련학자 세베린 비알레르에 따르면 1964년 10월 브레즈네프 집권 이후 당은 임명권을 상당히 확대했다.
그러나 현상 자체가 이 시기에 시작된 것은 아니다. 드네프로페트로우시크 그룹은 대숙청 이후 지역 당 조직이 재건되는 과정에서 등장해 1950~60년대에 확고히 자리 잡았으며, 정체 시기는 그 정점이지 기원이 아니다.
공식적 인정과 논쟁성
정체 현상에 대한 공식적 인정은 1986년 2월 제27차 소련공산당 대회 고르바초프의 정치보고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보고는 경제·사회 두 영역 모두에서 사회 생활에 정체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이 시기는 보통 브레즈네프 취임(1964)부터 이 대회 또는 1987년 1월 중앙위원회 총회까지로 구분된다. 같은 시기 부패가 크게 늘었고 반대 의견은 법에 따라 기소되었으며, 동시에 산업 생산과 생활 수준의 지표도 기록되었으므로 이 시기를 쇠퇴만으로 환원할 수는 없다.
이 용어가 논쟁적인 까닭은 정권이 씨족적 특수주의를 파벌주의로 규정하며 비판하는 동안 씨족적 충원이 최측근 인사를 형성했기 때문이다. 한 서술은 이런 집단을 '일종의 정치 마피아'라 부르며 공동체·가족 유대·경제적 이해관계를 그 원리로 꼽는다.
소련 해체 이후의 궤적은 양측을 함께 기록해야 한다. 드네프로페트로우시크 사례는 소련기의 정치집단과 이후 우크라이나의 과두·정치인·조직범죄 연루 집단이라는 별개의 두 계기로 구분된다. 우크라이나에서는 2014년 유로마이단 이후 클랜 체제 자체가 종결되고 정부가 권위의 중심으로 굳어졌다고 서술되는 한편, 드네프로페트로우시크 마피아는 도네츠크·키이우 클란과 달리 존속했다. 도네츠크 클란은 늦은 소련기부터 2014년 존엄혁명까지 활동하다 그때 붕괴했다. 이런 집단은 특정 도시의 별칭이 아니라 여러 지역 사례를 포괄하는 일반적 범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