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캄푸치아 연합정부
Coalition Government of Democratic Kampuchea (CGDK)
민주캄푸치아 연합정부(CGDK)는 시아누크의 FUNCINPEC, 민주캄푸치아당(흔히 크메르루주), 크메르인민민족해방전선(KPNLF) 세 캄보디아 정치 세력이 1982년에 결성한 망명 연합정부다. 베트남이 세운 캄푸치아 인민공화국에 맞선 저항 세력의 통합체였고, 1990년 캄보디아 국민정부로 개칭되었다.
상세
결성 배경
베트남은 1978년 12월 민주캄푸치아를 침공해 1979년 1월 6일 프놈펜에 들어갔고, 20만 베트남군과 크메르루주 이탈자들이 폴 포트 정권을 축출했다. 다수의 캄보디아인은 처음에 이들을 해방자로 환영했으나 일부는 베트남과의 오랜 적대 관계를 상기하며 반대했다.
베트남이 세운 캄푸치아 인민공화국(PRK)은 국제적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크메르루주가 축출된 뒤 중국 지도자 덩샤오핑은 베트남의 PRK 정부 장악에 불만을 품고 시아누크에게 크메르루주와 협력해 PRK를 전복할 것을 제안했으나, 시아누크는 크메르루주가 집권기에 추구한 집단살해 정책에 반대하여 거부했다. 시아누크는 1981년 3월 저항운동 FUNCINPEC을 창설했고, 덩샤오핑과 싱가포르의 리콴유 총리의 중재로 수차례 협상 끝에 FUNCINPEC, KPNLF, 크메르루주가 1982년 6월 CGDK 결성에 합의했다.
민주캄푸치아당(PDK)은 1981년 12월 캄푸치아 공산당의 계승으로 창설되었고, 외국 지원을 얻기 위해 크메르루주는 1981년 공산주의를 공식적으로 포기했다. 1982년 CGDK 결성 당시 크메르루주 세력은 베트남 지원 정부에 의해 태국 국경 인근으로 밀려나 있었다. KPNLF는 PRK에 반대해 1979년 결성된 우익·친서방·반공 정치 전선이었다.
결성과 구성
연합 협정 서명식은 1982년 6월 22일 쿠알라룸푸르에서 열렸다. 대통령은 시아누크, 총리는 KPNLF 지도자 손 산, 외무장관은 PDK 지도자 키우 삼판이 맡았다. 1981년 9월 2~4일 싱가포르 정상회담에서 세 지도자는 민주캄푸치아 연합정부 창설을 포함한 4개항 합의에 도달했고, 대부분의 관측자는 이를 크메르루주 정권이 유엔 의석을 유지할 수 있게 하는 돌파구로 평가했다. 심각한 내부 불화에도 불구하고 1982년 6월의 삼자 연합 결성은 저항 세력의 중요한 성과였고, CGDK는 반베트남 투쟁의 중심이자 국제 포럼에서 캄보디아의 합법적 대변자 역할을 했다.
연합의 비공산 두 세력(KPNLF·FUNCINPEC)은 크메르루주의 이념과 방법에 동의하지 않았지만, 국제적 정당성과 승인을 높이기 위해 CGDK에 합류했다. 이는 캄보디아인들이 외국 점령자를 몰아내기 위해 이견을 제쳐두고 단결한 것처럼 보이게 했다. 1978년 베트남 침공 이후 많은 캄보디아인이 민족 통일에 열망했지만, 크메르루주와 베트남 어느 쪽에도 지배받지 않기를 바랐고 크메르루주 반대를 민족적 자유 회복 운동의 필수 조건으로 여겼다.
유엔 의석과 국제적 지지
CGDK는 유엔에서 캄보디아 의석을 유지했는데, 이는 베트남·소련 지원의 캄푸치아 인민공화국과 대비해 합법적 캄보디아 정부라는 전제에 기반했다. 동구권의 대표 교체 제안에 서방 국가들이 반대했다. 1979년 11월 14일 유엔 총회는 민주캄푸치아 축출 제안을 표결에 부쳤고 91개국이 반대(제안 거부), 29개국이 찬성, 26개국이 기권했다. 1981년 9월 18일 표결은 77 대 37, 31개국 기권이었다. 연합은 파리협정 서명 시점까지 유엔 캄보디아 의석을 점유했으며 중국·미국·ASEAN의 지원을 받았다. 실효 정부는 베트남·소련 지원의 프놈펜 인민공화국이었다.
CGDK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승인도 받았는데, 김일성이 시아누크에게 중국과 함께 망명처를 제공했다. 1986년 4월 10일 평양 회담에서 김일성은 캄보디아의 합법적 국가원수로 시아누크를 계속 인정하겠다고 재확인했다. 결성 이전인 1980년대 말~1990년대 초 KPNLF와 FUNCINPEC은 소련·베트남의 캄보디아 개입에 대응하려는 레이건 독트린의 일환으로 미국의 군사·재정 지원을 일부 받았다.
군사 세력과 1984~1985년의 약화
크메르루주는 대부분 외교적으로 고립되어 있었지만, 그 민주캄푸치아 국민군은 CGDK에서 가장 크고 효과적인 무장 세력이었다. 1984~1985년 베트남군의 공세로 CGDK 군대는 심각하게 약화되어 비공산 두 세력은 군사적 행위자로서 사실상 제거되었고, 크메르루주만이 CGDK의 유일한 중요 군사력으로 남았다.
개칭과 해산
1990년 유엔 파리협정을 앞두고 CGDK는 캄보디아 국민정부로 개칭했고, 1993년 해산되었다. 같은 해 유엔 캄보디아 과도당국(UNTAC)이 권한을 복원된 캄보디아 왕국에 이양했다. 민주캄푸치아당은 1992~1993년 선거를 앞두고 대체로 캄보디아 민족통일당으로 계승되었고, 1994년 7월 불법화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