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민포름 1948년 부쿠레슈티 회의
Cominform 1948 Bucharest Conference
루마니아 부쿠레슈티에서 열린 코민포름 제2차 회의로, 유고슬라비아 공산당 문제를 다루기 위해 소집되었다. 소련, 불가리아, 체코슬로바키아, 헝가리, 폴란드, 루마니아, 프랑스, 이탈리아 8개 당이 참석했고 유고슬라비아는 초청을 거부했다. 6월 28일 채택된 결의는 유고슬라비아 공산당 지도부를 사회주의 진영 밖으로 몰아냈고, 코민포름 본부는 베오그라드에서 부쿠레슈티로 옮겨졌다. 이 결정은 동유럽 각국에서 '티토주의' 숙청과 재판을 촉발한 출발점이었다.
상세
1948년 6월 부쿠레슈티에서 열린 코민포름 제2차 회의는 유고슬라비아 공산당 문제를 다루기 위한 자리였다. 코민포름은 이미 1948년 5월 19일 유고슬라비아 공산당에 회의 초청을 보냈고, 유고슬라비아 지도부는 다음 날 이를 거부했다. 회의에는 소련, 불가리아, 체코슬로바키아, 헝가리, 폴란드, 루마니아, 프랑스, 이탈리아 8개 당이 참석했으며 유고슬라비아 대표는 없었다. 코민포름 자체 회의 순서로는 3차 회의로 헤아려지며, 다른 기록은 회의를 1948년 6월 19~23일로 잡기도 하므로 날짜를 하루로 확정하지 않고 1948년 6월로 둔다.
6월 28일 채택된 결의는 유고슬라비아 공산당 지도부가 대소 적대 정책을 폈고 마르크스주의의 이론과 실천을 위반했으며 내부 민주주의가 결여되어 비판을 받아들이지 못한다고 규정했다. 결의는 유고슬라비아 공산당을 코민포름 밖에 두면서 당내에 충성스러운 '건강한 세력'이 있다고 주장하고, 그 충성의 기준을 티토 축출 의지로 제시했다. 8개 당의 제명 결정은 만장일치였다. 유고슬라비아 측은 6월 29일 공식 성명으로 결의의 비판을 거부했고, 유고슬라비아 여론은 6월 28일 프라하 신문 『루데 프라보』가 결의를 게재하면서 처음 분열을 알게 되었다. 라디오 베오그라드는 6월 30일 공식 반응을 내보냈다.
회의의 후속 조치로 코민포름 본부와 기관지는 베오그라드에서 부쿠레슈티로 옮겨졌다. 이어 코민포름은 동유럽 공산당들의 강령과 간부 구성을 개편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유고슬라비아는 이후 독자적 자주관리 사회주의의 길로 나아갔고, 코민포름은 '티토주의'로 지목된 인물들에 대한 숙청과 재판의 중심이 되었다.
관련 인물
관련 역사 사건
출처
- 위키백과 (영문) Zhdanov's June 1948 Bucharest mission, restrained line vs. Malenkov, removal from posts, sanatorium exile, death two months later
- 위키백과 (영문) Cominform meeting June 1948 in Bucharest, Yugoslav refusal to attend, June 28 Resolution on the KPJ, expulsion from Cominform, headquarters moved to Bucharest
- 마르크스주의 인터넷 아카이브 Second Conference of the Cominform held June 1948 without Yugoslav representation; French and Italian delegates led criticism; resolution expelling CPY
- history.state.gov US State Department editorial note confirming June 1948 Bucharest meeting of eight parties, Yugoslav refusal, June 28 resolution condemning CPY leadership
- history.state.gov
- 위키백과 (영문)
- 위키백과 (영문)
- encyclopedi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