Обязательное изучение русского языка · 1938–1990

러시아어 의무 교육

Compulsory Russian

민족공화국과 자치주의 모든 학교에서 러시아어를 필수 과목으로 가르치게 한 정책이다. 1938년 3월 13일 당중앙위·인민위원회 결정 제324호 「민족공화국·주 학교의 러시아어 의무 학습에 관하여」로 시작되었고, 1961년 강령이 러시아어를 「민족 간 교류의 언어」로 규정하면서 지위가 굳었다. 1979년 타슈켄트 회의는 유치원 단계부터의 확대를 권고했고, 1983년 결정은 러시아어 교사에게 급여 가산과 학급 분반을 붙였다. 공화국 언어의 법적 지위는 유지되었으나 진학과 승진에서 러시아어가 갖는 실질적 가치는 계속 커졌다.

상세

1938년에 무엇이 달라졌나

코레니자치야 시기에도 러시아어는 가르쳐졌지만 의무는 아니었다. 1938년 결정은 이를 뒤집어, 민족 학교에서 러시아어를 배우지 않고 졸업하는 길을 없앴다. 공식 근거는 실용이었다. 군 복무와 기술 교육, 전국 단위의 인사 이동에 필요하다는 것이다.

같은 시기에 문자 정책도 맞물려 움직였다. 라틴 문자화으로 라틴 문자를 얻었던 언어들이 1936년부터 키릴 문자로 옮겨졌고, 정서법도 러시아어 쪽에 가깝게 조정되었다. 두 조치를 합치면 러시아어를 배우는 학생이 익혀야 할 문자가 하나로 줄어든다.

「민족 간 교류의 언어」

1961년 제22차 당대회 강령은 소비에트 인민이라는 새 범주와 함께 러시아어를 민족 간 교류의 언어로 규정했다. 이 표현은 러시아어를 다른 언어보다 위에 두지 않으면서도 사실상의 공통어 지위를 부여한다. 공화국 언어를 금지하지 않고, 다만 그것으로 갈 수 있는 곳의 한계를 정하는 방식이었다.

1970년대 후반 이 방향이 다시 강화된다. 1979년 5월 타슈켄트 회의는 러시아어를 「민족 우호의 언어」로 부르며 유치원부터의 교육 확대를 권고했고, 1983년 당중앙위·각료회의 결정은 민족 학교에서 러시아어 수업의 학급을 나누고 담당 교사에게 급여를 더 주도록 했다.

저항은 어디서 나왔나

가장 뚜렷한 사례는 1978년 4월 14일 트빌리시다. 새 공화국 헌법 초안이 그루지야어의 단독 국가어 지위를 지우려 하자 2만 명이 거리로 나왔고, 제1서기 셰바르드나제가 모스크바와 협의해 조항을 유지했다.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은 같은 일이 벌어지기 전에 자국어의 국가어 지위를 선제적으로 규정했다.

정책의 실제 효과에 대해서는 평가가 갈린다. 러시아어 능력이 넓어진 것은 사실이지만, 1970~1980년대 인구조사는 공화국 기간 민족의 모어 유지율이 대체로 높게 유지되었음을 보여 준다. 러시아어는 제2언어로 확산되었을 뿐 모어를 대체하지는 못했고, 그 불균형이 1988년 이후 공화국 언어법의 요구로 터져 나왔다.

관련 인물

출처

  1. docs.historyrussia.org Постановление ЦК ВКП(б) и СНК СССР № 324 «Об обязательном изучении русского языка в школах национальных республик и областей». 13 марта 1938 г.
  2. 위키백과 (러시아어) статус русского как «языка межнационального общения», кириллизация и сближение орфографий, республиканские законы о языках 1988-1990 гг.
  3. 위키백과 (러시아어) Ташкентская конференция мая 1979 г. и постановление 1983 г. о доплате учителям русского языка и делении классов.
  4. 위키백과 (영문) демонстрация 14 апреля 1978 г. в Тбилиси и сохранение статьи 75 о государственном статусе грузинского язык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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