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류 판매 제한 완화에 관한 각료회의 결정」(1988년 10월)
Council of Ministers Decree on Relaxing Alcohol Sale Restrictions (October 1988)
1988년 10월 12일 CPSU 중앙위원회 결정에 뒤이어 소련 각료회의가 채택한 결정. 1985년 5월부터 시행된 고르바초프 반알코올 캠페인을 사실상 종결시킨 문서로, 과도한 생산 축소와 판매 제한이 예산 적자, 줄서기, 사밀주 제조 폭증, 설탕 부족을 초래했음을 인정하고 주류 생산량을 대폭 늘려 대기열을 해소하도록 지시했다. 니콜라이 리시코프 각료회의 의장이 주도했으며, 캠페인을 '행정적 과잉'으로 규정한 중앙위원회 결정의 실무적 후속 조치였다.
상세
결정의 배경
1985년 5월 7일 중앙위원회 결정 「음주와 알코올 중독 퇴치 조치」와 같은 날의 각료회의 결정 제410호, 그리고 같은 달 16일 최고회의 간부회 정령으로 시작된 캠페인은 3년 만에 재정과 민심 양쪽에서 파열음을 냈다. 1987년 중반 정치국은 캠페인의 향방을 소련 각료회의에 넘겼고, 리시코프 총리의 제안에 따라 1988년 1월 1일부터 국가의 포도주·보드카 생산과 판매를 늘리는 권고가 채택되었다. 같은 해 7월에는 판매 목적 없는 대용주 제조에 대한 형사 책임이 행정 책임으로 낮아졌다.
각료회의 의장 리시코프는 1988년 9월 초 정치국에 보낸 메모에서 3년 사이 무역 부문의 줄서기가 절반 이상 늘어난 원인이 주류 판매의 급감에 있다고 보고했다. 소비자들은 수요를 식료품과 의류·신발로 돌렸고, 1987년 설탕 판매량은 928만 톤으로 1985년보다 143만 톤(18%) 늘었는데 그중 140만 톤이 사밀주 양조에 쓰여 1억 4000만~1억 5000만 데칼리트르의 사모곤을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결정의 진단과 지시
1988년 10월 12일 결정은 제한 조치가 낳은 구체적 폐해를 열거했다. 주류가 격렬한 수요의 대상이 되면서 긴 줄이 생기고 사밀주 양조와 주류 투기, 약물 남용과 마약 중독이 급증했으며 설탕·과자류 거래에 어려움이 생겼고, 주류 재고의 감소가 다른 상품과 서비스의 공급으로 상쇄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결정은 대기열을 가능한 한 빨리 없애라고 지시하면서도 유치원·학교·공장 출입구·휴식 공간과 교통수단 주변에서의 판매 금지를 재확인했고, 금주법 지지자와 '교양 있는 음주'론 모두를 배격하며 음주 반대 노선에서 후퇴하지 않을 것을 분명히 했다.
문서의 성격과 후속 조치
이 결정은 개별 문서로는 캠페인의 종결을 선언한 것이 아니라, 1985년 5월 7일 결정의 이행 경과를 검토하는 형식을 취했다. 그럼에도 캠페인의 사실상 종료를 알린 문서로 취급되며, 연구자들은 1985~1988년이라는 통상적 시기 구분을 이 결정에 근거해 잡는다. 캠페인이 공식적 종료 이후에도 실제로는 이어졌다는 점도 함께 지적된다. 국가의 주류 생산 재개에는 시간이 걸렸고 높아진 가격도 그대로 남았기 때문이다.
제한 조치 자체는 이 결정으로 폐지되지 않았다. 오후 2시 이전 판매 금지는 1990년 7월 24일 각료회의 결정 제724호로 풀렸으며, 이 결정은 1985년 5월 7일 각료회의 결정 제410호의 해당 조항을 무효화했다. 사료 가운데에는 이 날짜를 '6월 24일'로 적은 것도 있어, 7월설과 함께 병기할 필요가 있다.
결정을 둘러싼 조건과 결과
결정의 배경에는 재정 압박이 있었다. 리시코프는 1988년 사회경제 계획 논의에서 예산과 상품의 적자가 100억 루블이고 그중 90억 루블이 보드카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정치국에 보고했다. 주류 수입은 1985년 계획 600억 루블에서 460억 루블로 줄어 140억 루블의 결손을 만들었고 이는 1991년까지 이어졌다. 식품공업의 주류 수입은 1986년 380억, 1987년 350억 루블로 떨어졌고, 파블로프 재무장관은 1989년 9월까지 잃은 주류 수입을 918억 루블로 집계했다.
캠페인의 집행 자체는 판매 시간을 14시~19시로 제한하고, 주류 판매점과 증류소를 대거 폐쇄하고, 가격을 올리고, 21세 미만에 대한 판매를 금지하고, 공원과 광장에서의 음주를 처벌하고, 무주류 결혼식을 장려하고, 당원들에게 금주회 가입을 압박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성과도 기록되었다. 1987년까지 합법 주류 소비는 계획한 25%가 아니라 2.7배 이상 줄어 연간 약 4리터가 되었지만 사모곤과 대용주가 이를 대체했고, 전체 소비는 약 40% 감소한 것으로 추산된다. 보드카 생산은 1984년 2억 8100만 데칼리트르에서 1987년 1억 2300만 데칼리트르로 줄었고 병값은 4.7루블에서 9.1루블로 올랐다. 캠페인 종결 무렵 제시된 보건 지표로는 1인당 공식 판매량이 2.5배 이상 감소, 연간 출생아 약 550만 명(이전 수십 년보다 약 50만 명 증가)과 허약아 8% 감소, 남성 기대수명 2.6년 상승(러시아 역사상 최고치), 1985~1992년 초과 사망 감소 추정치 약 138만 3400명이 있다.
문서 식별에 관한 유보
이 항목은 「주류 판매 제한 완화에 관한 각료회의 결정」이라는 제목과 '와인·보드카 제품의 대기열 해소에 관한' 러시아어 원제로 등록되어 있으나, 검색된 사료에서 그러한 각료회의 결정은 확인되지 않는다. 확인되는 각료회의 결정은 1985년 5월 7일 제410호와 1990년 7월 24일 제724호뿐이며, 대기열 해소 지시는 1988년 10월 12일 당 중앙위원회 결정에 담겨 있다. 영어권 개설에서는 1988년 10월 여론의 압력 속에 캠페인이 사실상 중단되었고 제한 법규는 1990년까지 형식상 남아 있었다고만 서술한다. 따라서 이 항목은 문서 식별 문제를 안고 있으며, 각료회의 명의의 후속 결정이 사료로 확인되기 전까지는 위와 같이 제시하는 것이 타당하다.
관련 인물
관련 역사 사건
출처
- kommersant.ru confirms 12 October 1988 CC resolution and Ryzhkov's role: budget deficit of 10 billion rubles, 9 billion from vodka; the resolution 'фактически прекратившее антиалкогольную кампанию'
- 위키백과 (러시아어) provides full context of the 1985–1990 campaign, including the Council of Ministers decree № 410 of May 1985 as starting point
- 위키백과 (영문) English-language overview: 'In October 1988, under public pressure, the anti-alcohol campaign was effectively discontinued'
- pmc.ncbi.nlm.nih.gov NBER/NIH paper: 'The Soviet Central Committee officially ended the anti-alcohol campaign in October 1988'
- ed-glezin.livejournal.com reproduces the full text of the October 12, 1988 CC resolution, confirming its criticisms of 'запретительные, волевые методы, перехлёсты' and its directive to restore production
- st-hum.ru academic article noting the CC resolution 'по сути дела положившая конец антиалкогольной кампании'
- kommersant.ru
- vestarchive.ru
- ed-glezin.livejournal.com
- ed-glezin.livejournal.com
- pmc.ncbi.nlm.nih.gov
- 위키백과 (영문)
- 위키백과 (러시아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