культурно-историческая теория · 1920년대 중반–1930년대(형성기)

문화역사이론

Cultural-Historical Theory

고등정신기능이 생물학적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언어와 도구 같은 문화적 수단의 매개와 내면화를 통해 사회문화적 상호작용 속에서 만들어지고 형성된다고 보는 이론이다. 레프 비고츠키와 알렉산드르 루리야 및 그들의 서클이 1920년대 중반부터 1930년대까지 모스크바와 하르코프에서 개시했으며, 정신·뇌·문화의 통일성을 사회역사적 조건에서 설명하려 했다. '문화역사'라는 표기는 비고츠키 자신의 텍스트에는 나오지 않고 1930년대 비판자들이 붙인 이름이지만, 이후 추종자들의 출판물을 통해 자리잡았다. 급진적 형태에서 이 기획은 최고 수행과 미래적 '초인' 능력에 초점을 맞춘 '초인의 과학'으로 표방되었으나, 통합적 '새로운 심리학'은 완성되지 못했다.

상세

명칭과 형성

비고츠키 자신의 텍스트에는 '문화역사'라는 표기가 결코 나오지 않는다. 1930년대 비판적 저작들이 이 명칭을 고발과 폭로의 목적으로 도입했고, 이후 비고츠키의 추종자를 자처한 학자들 사이에서도 자리잡아 그들의 출판물을 통해 확산되었다. 다만 러시아어 위키백과의 비고츠키 항목은 이 표기가 그의 텍스트에 한 번 등장한다고 서술하여 '결코 등장하지 않는다'는 서술과 충돌하므로, 어느 쪽을 채택할지는 출처 판단의 문제로 남는다. 이와 유사하게 비고츠키의 생전 출판 텍스트에는 '고등정신기능'이라는 표현이 대상 연구를 가리키는 말로 나오지 않으며, 그는 '고등심리기능' 및 이와 유사한 표현들을 사용했다.

서클은 1924년 비고츠키가 고멜에서 모스크바로 옮긴 해에 결성되어 1920년대 중반부터 1930년대까지 연구 프로그램을 본격화했다. 1931년 모스크바 서클의 심리학자들이 우크라이나 정신신경학 아카데미의 심리학 부문 조직을 돕기 위해 하르코프로 옮겼고(루리야가 부문장, 레온티예프가 유전심리학과장), 루리야의 중앙아시아 심리학 원정이 1931년과 1932년에 진행되었으며 이 협업은 '하르코프 그룹'으로 남았다. 1932년 12월 모스크바에서의 의식에 관한 보고를 계기로 비고츠키는 하르코프의 레온티예프 그룹과 형식적으로 갈라섰고, 레온티예프는 1934년 모스크바로 돌아왔다. 비고츠키는 1934년 6월 11일 모스크바에서 37세로 결핵 재발로 사망했고, 그 무렵 스스로 의식에 관한 새로운 심리학 이론의 문턱에서 죽는다고 인정했다.

억압과 사후 편집

스탈린 시대 러시아의 정치적 제약은 1930년대 중반 이 학파를 억눌렀고, 그 결과 핵심 '활동' 개념은 심리학 분야에 국한되어 남았다. 영어 위키백과 비고츠키 항목은 그가 죽은 뒤 그의 저서와 연구가 1953년 스탈린 사망까지 소련에서 금지되었고 1956년에야 주요 텍스트 선집이 출판되었다고 서술하는 반면, 영어 위키백과 활동이론 항목은 '대중적 통념과 달리 비고츠키의 저작은 스탈린 정부 하에서 금지된 적이 없다'고 명시한다. 두 서술이 충돌하므로 금지와 출판정지 문제는 단정하지 않고 병기한다. 제도적 차원에서는 1936년 볼셰비키 전연합공산당 중앙위원회 결정 「나르콤프로스 체계 내 페돌로기적 왜곡에 관하여」가 페돌로기를 독자적 학문 분과이자 사회운동으로서 사실상 폐기했고, 비고츠키도 주요 대표자의 한 사람이었던 페돌로기는 심리학, 특히 아동(연령)심리학의 틀 안에서 다른 학문명으로 존속하게 되었다.

1934년 사후 그의 저작을 출판 준비하는 과정에서부터 체계적 편집이 가해지기 시작해 1950~80년대 소련 시기 사후 출판물(1980년대 초 야로셰프스키 등 편집의 6권 전집 포함)에서 시스템적 왜곡과 날조에 이르렀다는 비판이 있다. 러시아어권 학계 일각에서는 '문화역사' 이론이 비고츠키 유산의 사후 날조의 가장 두드러진 표현이며, 1960년 왜곡된 형태로 출판된 미완성·무제 원고가 마치 그의 주요 이론 저작인 것처럼 제시되어 저·고등 심리기능 구분 등 문화역사적 발달 이론이 정식화되었다고 본다. 다만 이는 논쟁적 평가이며, 출처들은 '문화역사이론'이라는 단일 이론의 성립 연도나 종료 연도를 확정하지 않는다. 비고츠키 생전에 이 이론은 그 자체로 성립하지 않았고 그는 독자적 발달 이론을 완성하지 못했으며, 비고츠키와 루리야의 '새로운 심리학' 기획은 전체적으로 실패하여 1934년 그의 사망 시점까지도, 그 이후에도 정신과 발달에 관한 보편적 통합 이론은 세워지지 못했다. 1934년 사후에도 협업은 루리야와 레온티예프의 지도로 계속되었으나 1941년 전쟁 발발로 구성원 간 연계가 부분적으로 끊기고 전후에는 산발적으로만 유지되다 그룹이 해체되었다.

이론적 전제와 개념

문화역사심리학은 비고츠키와 루리야가 마르크스주의 원리에 따라 사회의 영향(경제적 기반과 생산관계 포함)과 문화 일반이 '고등 심리기능' 발달에 미친 결과라는 주장에 기초했으며, 이 관념은 비고츠키보다 최소 50년 앞서 '사회발생'(sociogenesis)이라는 이름으로 논의되었다. 참가자들은 변증법적 유물론과 독일 고전철학, 헤겔, 괴테의 낭만주의 과학, 마르크스의 포이어바흐 테제 정신에 기대어 행동주의·반사학과 결별하고 '예술품 매개적·대상 지향적 행위'로서의 활동 개념을 세웠다. 핵심은 매개이며, 기호와 도구는 구별된다. 도구는 '밖으로' 향해 현실을 변형하는 반면, 기호는 '안으로' 향해 먼저 타인을 변형하고 이어 자기 행동을 통제하며, 말(단어)은 자발적 주의의 수단, 속성의 추상화와 개념 형성, 심리적 조작의 자발적 통제 수단이다.

근위발달영역(ZPD) 개념은 1932~1934년 비고츠키가 아동의 학습과 정신 발달의 연관을 규정하기 위해 도입했으며, 아동이 혼자서는 풀 수 없지만 성인과의 공동 활동이나 협력을 통해서는 해결할 수 있는 과제의 내용으로 규정된다. 이 개념은 학습 대 발달의 관계에 대한 논쟁을 마무리하고 발달은 학습을 뒤따른다는 비고츠키의 테제로 이어졌다. 출처는 문화역사이론의 구분을 저·고등 심리기능 구분으로 제시하고, 둘의 주요 차이를 자발성(임의성)의 수준에 둔다. 자연적 심리과정은 인간이 규제할 수 없지만 고등 심리기능은 의식적으로 통제할 수 있다는 것이다.

구별: 활동이론과 CHAT

문화역사이론/고등심리기능 개념과 구별되는 활동이론은 루빈슈타인이 '의식과 활동의 통일' 원칙으로 정초하고 레온티예프가 비고츠키적 문화역사 접근에 대한 자신의 해석에 기초해 발전시킨 소련 심리학파로, 창설 시기는 1920~1930년대로 제시된다. 루빈슈타인은 1930년대 중반 첫 심리학 출판물들에서 마르크스 텍스트에 기대어 활동 접근의 기초를 놓았고, 1935년 저서 『심리학의 기초』에서 활동 개념을 다각도로 다루었으며, 레온티예프는 활동이론 자체를 약 1960년대부터(루빈슈타인 사망 후) 발전시켰다. 레온티예프는 1924년부터 1930년까지 비고츠키·루리야와 함께 마르크스주의 심리학 발전에 협력했고, 1931년 비고츠키 그룹을 떠나 하르코프의 직위를 맡았으며(갈페린·진첸코 합류), 1934년 모스크바로 돌아와 1950년 모스크바대학 심리학과장이 되어 1979년 사망할 때까지 재직했고, 1962년 이후 그의 활동이론 정식화가 소련 심리학의 새로운 '공식' 기반이 되었다.

CHAT이라는 용어는 마이클 콜이 만들고 위르예 엥게스트룀이 대중화했으며, 1990년대에 이르러 다양해진 비고츠키 계보의 여러 흐름의 통일을 촉진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 흐름 중에는 1930년대부터 쓰인 문화역사심리학과 1960년대부터 쓰인 활동이론이 두드러진다. 활동이론은 뒤에 세 개의 주요 '세대'로 정리되었는데, 1세대는 개인 관점에서의 비고츠키 매개된 행위, 2세대는 집단을 강조한 레온티예프의 활동체계, 3세대는 1990년대 중반에 등장해 부분적으로 공유된 대상을 중심으로 상호작용하는 다중 활동체계와 경계 넘기를 다룬다. 자기선언적 '비고츠키주의' 이론·연구분야는 원래 기획의 역사적 뿌리와 의도된 폭·깊이, 그리고 새로운 의식 이론의 필요성에 대한 일관된 강조를 무시하며, 여기에는 사회문화심리학, 사회역사심리학, 활동이론, 문화심리학, 문화역사활동이론(CHAT)이 포함된다. 즉 이들은 원래의 비고츠키-루리야 기획과 혼동해서는 안 된다.

확산과 수용

비고츠키의 발달 심리학은 생물학적으로 결정된 능력의 관점에서 아동 발달을 설명하는 것에 대한 대안으로, 고등 정신기능이 사회·문화적 상호작용과 내면화를 통해 어떻게 발달하는지, 그리고 그것이 한 문화의 공유 지식을 어떻게 재현하는지를 관찰한 데 기초한다. 언어와 사고의 관계에서 비고츠키는 피아제와 달리 '자기중심적 언어'가 성숙과 함께 소멸하는 것이 아니라 내적 언어로 전환되며 그것이 '사고'가 된다고 보았다. 피아제는 자기중심적 언어가 내적 언어에서 나와 아동이 성숙하면서 사라진다고 생각했다.

비고츠키와 루리야의 초기 지적 노력과 소련 학자들의 유산은 문화·아동심리학과 교육(특히 역동적 평가와 발달교육), 신경심리학, 심리언어학을 포함한 특수하고 느슨하게 연결된 심리학 이론·실천 분야를 낳았다. 영어권에서는 마이클 콜이 1962년 루리야 밑에서 1년 연구를 위해 모스크바에 간 심리학 교환 대학원생으로 비고츠키·루리야 사상을 앵글로색슨 독자에게 소개한 최초의 서양인 중 한 명이며, 영어로 번역된 최초의 책들은 비고츠키 『사고와 언어』(1962), 루리야 『인지 발달』(1976), 레온티예프 『활동·의식·인격』(1978), 베르치 『소련 심리학에서의 활동 개념』(1981)이었다. 제도적으로는 헬싱키의 엥게스트룀(CRADLE) 그룹이 CHAT 관련 연구를 주도했고, 1986년 서베를린 예술대학에서 최초의 ISCAR 국제 활동이론 학술대회가 열렸으며 1992년 ISCRAT가 암스테르담에서 자체 정관을 갖춘 법적 조직이 되었고, 2002년 ISCRAT와 사회문화연구 학회가 합병해 3년마다 국제대회를 연다.

사례와 한계

주사위 던지기 같은 보조수단을 도입해 문제 상황을 변형·해결하는 '부리다노프의 당나귀' 상황, 그리고 기억을 위한 매듭짓기와 손가락 셈하기가 매개된 고등 심리기능의 예로 분석된다. 한편 문화역사이론의 자기이해는 미완성된 '피크/고등 심리학'('초인' 유토피아적 기획)이었고, 사회적·목적지향적 발달 메커니즘의 선언적 주장에도 불구하고 21세기 초까지 비고츠키의 원래 기획은 실현되지 않았다는 점이 이 이론의 특징적 한계로 지적된다. 출처는 소련·포스트소비에트 시기에 걸쳐 형성된 별도의 '활동과 연령 발달' 연구 방향을 구분해 서술하고, 첫 학술 교본이 2014년에 나왔으므로 단일한 시작·종료 연도를 확정하지 않는다.

관련 인물

출처

  1. 위키백과 (영문) Cultural-historical psychology overview: origin with Vygotsky–Luria Circle, mid-1920s–1930s; the label never used by Vygotsky himself; higher mental functions as socially mediated; Marxist foundations
  2. 위키백과 (러시아어) Russian Wikipedia: confirms term coined in 1930s critical works, later adopted; Marxist direction in psychology; mediation by signs and words
  3. 마르크스주의 인터넷 아카이브 Marxists Internet Archive Vygotsky section: primary texts on higher mental functions, cultural development of the child, and the project of a Marxist psycholog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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