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코슬로바키아 국민사회당
Czechoslovak National Social Party
1897년 체코 민족의 국가권을 부정한 사회민주당에 반발한 노동자들이 만든 체코 정당. 개혁 사회주의와 민족 급진주의를 결합했고, 제1공화국 시기 대부분의 정부에 참여한 주요 정당이었다. 에드바르트 베네시가 부당수를 지냈으며, 1946년 총선에서 공산당 다음가는 제2당이 되었으나 1948년 2월 공산당 집권으로 자유로운 활동이 끝났다.
상세
체코어 출처에 따르면 1897년 3월 30일 체코 사회민주당 의원들이 제국의회에서 체코 국가권과 거리를 두는 선언을 하자, 이에 반발한 「민족 노동자」들이 4월 4일 프라하 구시청사에서 모인 것이 창당 집회가 되었다. 당은 처음 「민족노동자당」으로 불리다가 이듬해 「체코 국민사회당」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개혁 사회주의, 민족 급진주의, 반오스트리아 반군국주의를 결합했고, 이 때문에 제1차 세계대전 중 탄압을 받았다. 1918년 봄 마사리크의 진보당 등과 합쳐 「체코 사회당」이 되었다.
체코슬로바키아 독립 뒤 당은 「체코슬로바키아 사회당」으로 활동했고, 1926년 대회에서 「체코슬로바키아 국민사회당」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같은 대회는 당수 바츨라프 클로파치와 민족주의파 이르지 스트르지브르니의 다툼을 클로파치 쪽으로 정리하고 스트르지브르니 일파를 제명했다. 에드바르트 베네시는 1923년 입당해 1926~1935년 부당수를 지냈고, 1935년 마사리크의 추천으로 대통령에 선출되었다. 당은 「성(城)파」와 「5당 협의체(페트카)」의 일원으로 제1공화국 체제를 떠받쳤고 1918~1926년과 1929~1938년 정부에 참여했다.
1938년 뮌헨 협정 뒤 당은 갈라져 지도부 다수는 국민통일당으로, 일부는 국민노동당으로 옮겼다. 제2차 세계대전 중 당원들은 국내외 저항운동에 참여했고, 나치는 이 당을 「베네시당」이라 부르며 약 2,400명을 처형하거나 고문해 죽였다. 전후 당수 페트르 젠클과 밀라다 호라코바 등도 강제수용소에 갇혔다.
1945년 5월 당은 재건되었고 젠클이 당수로 선출되었다. 1945년 말 약 45만 명, 1946년 가을 약 59만 4천 명의 당원을 거느렸고, 1946년 총선에서 23.66%를 얻어 공산당 다음가는 제2당이 되었다. 1948년 2월 공산당의 집권으로 자유로운 발전이 끊겼고, 친공산 인사들이 지도부에 들어섰다. 이후 당은 「체코슬로바키아 사회당」이라는 이름으로 국민전선에 속한 위성 정당으로 남았다. 1989년 벨벳 혁명 초기에 반체제 인사들에게 신문과 건물을 내주었으나, 1996년 이후 의회 의석을 잃고 영향력이 미미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