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호메 통일당
Dahomeyan Unity Party
1960년 11월 13일 위베르 마가의 다호메 민주연합, 수루미강 아피티의 다호메 민족주의자당, 민족해방운동 등이 합쳐 생긴 다호메 공화국(지금의 베냉)의 정당. 그해 선거에서 국회 60석을 모두 차지했고, 1961년 주요 야당이 금지되면서 유일 합법 정당이 되었다. 1963년 10월 군사 쿠데타로 마가가 쫓겨난 뒤 해산되었다.
상세
프랑스어 출처에 따르면 다호메 통일당은 1960년 11월 13일 위베르 마가가 이끄는 다호메 민주연합(RDD), 수루미강 아피티가 이끄는 다호메 민족주의자당(PND), 장 플리야와 알베르 테보에즈르가 함께 세운 민족해방운동(MLN), 그리고 여러 작은 이탈 세력이 합쳐 생겼고, 마가가 새 당의 지도자가 되었다. 북부 이슬람권 주민에 기반한 RDD와 남동부 요루바계에 기반한 PND의 지지층을 묶은 이 당은 종족·지역 분열 극복, 국민 통합, 긴축으로 국가 재정 균형, 아프리카 통일을 목표로 내걸고 「아프리카 사회주의」를 택했다.
마가는 1960년 선거를 앞두고 새 헌법으로 선거 제도를 바꾸어 당이 국회 60석을 모두 차지하게 했고, 마가가 대통령, 아피티가 부통령이 되었다. 1961년 3월 21일 첫 대회에서 당은 아프리카 민주연합(RDA)에 가입하기로 했고, RDA는 기존 지부였던 쥐스탱 아오마데그베의 다호메 민주연맹(UDD) 대신 이 당을 다호메 지부로 받아들였다. UDD는 1961년 4월 10일 해산·금지되었고, 정보 담당 국무비서 알베르 테보에즈르가 5월 28일 쿠데타 음모 적발을 발표한 뒤 아오마데그베가 체포되면서 다호메는 일당제로 넘어갔다.
마가는 창당 때 당 의장이었다가 1962년 당규 개정 뒤 서기장이 되었고, 정치국은 25명이었다. 1963년 10월 노조가 총파업을 촉구하는 가운데 크리스토프 소글로 대령이 이끄는 군이 27일 마가를 몰아냈고, 소글로는 칙령으로 당을 해산했다. 그 뒤 아오마데그베와 아피티가 새 유일 정당인 다호메 민주당을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