Днепропетровский клан / Дніпропетровський клан · 1964년–현재

드네프르파트

Dnieprpart (Dnipropetrovsk Clan)

드네프로페트로우시크(현 드니프로) 출신 당·국가 간부들이 상호 원조를 바탕으로 맺은 비공식 후견 네트워크로, 정식 조직이나 성원 명부를 가진 단체가 아니다. 1950~60년대 당 기구가 재건되면서 브레즈네프가 드네프로페트로우시크에서 함께 일한 인물들을 중심으로 형성되었고, 이름도 그가 당 경력을 시작한 이 지역에서 나왔다. 1964~1982년 브레즈네프 집권기에 이 인맥은 당·국가의 요직에 폭넓게 진출했으며, 소련 해체 이후에는 사유화를 거쳐 과두적 정치·금융 집단으로 변모했다.

상세

형성과 명칭

드네프로페트로우시크 클랜은 드네프로페트로우시크 출신 인물들이 상호 원조를 위해 맺은 비공식 인맥으로, 정식 조직이 아니라 당·국가 요직을 매개로 작동하는 후견 집단이다. 형성의 출발점은 대숙청 이후 드네프로페트로우시크주 당 기구가 재건되던 시기로 거슬러 올라가며, 제2차 세계대전 이후 1950~60년대에 브레즈네프의 측근 그룹으로 굳어졌다. 브레즈네프는 1935년 드네프로제르진스크 야금공업대학을 졸업하고 1938년 드네프로페트로우시크주 당위원회 상업부장, 1939년 선전 담당 서기, 1940년 방위산업 담당 서기를 지냈으며, 이후 드네프로페트로우시크주 당위원회 제1서기를 맡았다. 이 시기 드네프로페트로우시크는 핵무기 개발과 얽혀 폐쇄도시였고, 세계 최대 대륙간탄도미사일 생산지였던 피우덴마시(유즈마시)가 있던 곳으로, 이른바 마피아로 불린 인맥의 경제적 토대이자 자원이 되는 방위산업 자금이 흐르는 통로였다.

소련 시기

당 서기장이 된 1964년 이후 브레즈네프는 자신이 함께 일했던 인물들, 특히 드네프로페트로우시크 출신을 요직에 앉혔다. 창립 세대는 브레즈네프와 우크라이나 공산당 지도자 셰르비츠키를 축으로 하며, 티호노프, 키릴렌코, 셸로코프, 블라토프, 추카노프 등이 드네프로페트로우시크와 연결된 직위를 거쳤다. 각료회의 의장 티호노프, 국방 담당 중앙위 서기 키릴렌코, 총무부장 겸 중앙위 서기 체르넨코, 우크라이나 공산당 제1서기 셰르비츠키, 내무부장 셸로코프, 국가보안위원회 제1부의장 츠비군, 브레즈네프 보좌관 블라토프, 서기장 비서실장 추카노프 등이 그 예다. 1967년 정치국은 우크라이나계와 러시아계가 5대 5로 나뉘었다고 전해지며, 이는 드네프로페트로우시크와 연결된 인물들의 대표성이 어느 정도였는지를 보여준다. 브레즈네프 사후인 1982년과 1985년 고르바초프 집권 전후로 이 인맥의 다수는 퇴직하거나 일부는 체포되었지만, 인맥 자체는 이후 시기까지 존속했다.

소련 해체 이후

1991년 소련 해체와 우크라이나 독립 이후 사유화의 이익이 옛 당 기구 인사들에게 주로 돌아가면서 이 인맥은 과두적 집단으로 재편되었다. 1992~1993년 크라우추크 대통령 아래에서 쿠치마가 총리를 맡았고, 1990년대에 접어들어 드네프로페트로우시크 출신에 피우덴마시 책임자를 지낸 쿠치마가 지도자 역할을 맡으면서 돈바스에 뿌리를 둔 즈뱌힐스키 측과의 대립이 드러났다. 쿠치마 집권기에는 드네프로페트로우시크 출신 인사들이 대거 정부 요직에 등용되었고, 1996년경에는 내부 갈등이 격화되어 라자렌코가 총리에 임명되기도 했다. 라자렌코의 패배 이후 쿠치마는 클랜 간 분쟁의 조정자로 남았고, 드네프로페트로우시크 마피아는 여러 분파로 갈라졌다. 2004년 대선 무렵 가장 큰 두 분파는 쿠치마의 사위 빅토르 핀추크가 이끄는 인터파이프 계열과 이호르 콜로모이스키가 이끄는 프리바트 그룹이었으며, 라자렌코 계열에서 나온 율리야 티모셴코의 그룹은 오렌지 혁명 이후 권력을 잡았다.

2014년 이후

유로마이단 이후 우크라이나의 정치적 클랜 체제는 끝났지만, 드네프로페트로우시크 마피아는 도네츠크 클랜과 키이우 세븐이 소멸하는 동안에도 존속했다. 이는 드네프로페트로우시크주 지사로서 콜로모이스키가 한 활동과 관련이 있으며, 그가 2014년 친러 동요기에 이 주를 '우크라이나 국가성의 거점'으로 만들었다는 평가가 있다. 2019년 대선에서 젤렌스키가 콜로모이스키의 통제를 받는다는 우려가 제기되었고, 출범 초기에는 콜로모이스키의 이해와 충돌하는 인사들이 밀려났으나 미국의 금융 범죄 수사 이후 노선이 바뀌었으며, 2022년 러시아의 침공 뒤 콜로모이스키는 시민권을 박탈당했다.

구분과 명칭의 한계

'마피아'라는 이름은 범죄 조직이라는 뜻이 아니라 당·국가 직위를 통해 작동하는 후견 집단을 가리키는 정치문화적 명칭이다. 클랜 성원은 국가 요직을 거치며 공직 경력을 남긴 드네프로페트로우시크 출신 인사들로, 첫 세대는 브레즈네프·셰르비츠키·티호노프·키릴렌코·셸로코프·블라토프·추카노프, 이후 세대는 쿠치마·라자렌코를 축으로 하며 티모셴코, 푸스토보이텐코, 데르카치, 슈베츠, 쿨리첸코 등이 거론된다. 가장 큰 민간 사업 후원자는 프리바트 그룹의 콜로모이스키와 인터파이프의 핀추크였고, 쿠치마 계열과 티모셴코 계열 사이의 마찰이 알려져 있듯 이 인맥은 결코 단일하지 않았다. 일부 문헌은 브레즈네프·셰르비츠키를 제1세대, 쿠치마·라자렌코·메드베드추크·푸스토보이텐코·티모셴코·레오니드 데르카치·슈베츠·쿨리첸코를 제2세대, 콜로모이스키·핀추크·투르치노프·보홀류보프·필라토프·티히프코·야추바·안드리 데르카치·올렉산드르 두비나를 제3세대, 젤렌스키와 아이나 티임추크를 제4세대로 분류하기도 하는데, 이는 특정 문헌의 구분으로 제시된 것이다.

다른 지역 집단과의 구분

드네프로페트로우시크 인맥은 도네츠크 클랜, 키이우 세븐과 함께 쿠치마 시기 우크라이나의 주요 과두 집단으로 경쟁했으나, 2014년 이후의 운명은 갈렸다. 돈바스의 당 기구에서 나온 도네츠크 클랜은 2014년 존엄 혁명으로 해체되었고, 도네츠크가 분리주의 세력에게 넘어간 뒤 그 영향력은 크게 약화되었으며, 키이우 세븐 역시 살아남지 못했다는 평가가 있다. 반면 드네프로페트로우시크 인맥은 유로마이단 이후에도 존속한 것으로 서술된다. 다만 이 인맥을 민족적 기획으로 읽는 해석은 근거가 약하다. 브레즈네프-셸레핀 대립은 민족 간 대립이 아니었고, 브레즈네프는 러시아어 화자로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와 접점이 없었으며, 갈등의 축은 중앙집권과 이념 노선을 둘러싼 정치 문제였다.

관련 인물

관련 역사 사건

출처

  1. 위키백과 (영문) Wikipedia article on the Dnipropetrovsk Mafia/Clan, covering Brezhnev-era network members (Brezhnev, Chernenko, Tikhonov, Kirilenko, Shcherbitsky, Chebrikov, Tsvigun, Shchelokov) and post-Soviet iterations around Kuchma, Lazarenko, Kolomoyskyi, and Tymoshenko.
  2. 위키백과 (러시아어) Russian Wikipedia: defines the clan as an informal political (and from the 1990s political-financial) group formed on the zemlyachestvo principle, rooted in Brezhnev's early career in Dnipropetrovsk; classifies generations 1 (Brezhnev, Shcherbitsky) through 4 (Zelensky).
  3. globalsecurity.org GlobalSecurity.org entry identifying the clan's core members: Brezhnev, Tikhonov, Kirilenko, Chernenko, Shcherbitsky, Pavlov, Novikov, Shchelokov, Tsvigun, Blatov, Tsukanov, and noting the clan's background in the Dnipropetrovsk defense industry.
  4. eventsinukraine.substack.com Substack historical essay discussing the rise of the Dnepropetrovsk mafia and its rivalry with Shelepin, noting that by 1967 the Politburo was split 5–5 between Ukrainians (mostly Dnipropetrovsk-linked) and Russians.
  5. 위키백과 (러시아어)
  6. 위키백과 (영문)
  7. tass.ru
  8. globalsecurity.org
  9. eventsinukraine.substack.com
  10. 위키백과 (러시아어)
  11. 위키백과 (영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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