двойной ноль; double global zero · 1987년

더블 제로

Double Zero

1987년 7월 고르바초프가 제안한 INF 협상안으로, 중거리핵전력(LRINF, 사거리 1,000–5,500km)뿐 아니라 단거리핵전력(SRINF, 사거리 500–1,000km)까지 전면 폐기하는 내용이다. 레이건의 1981년 '제로 옵션'이 중거리만 겨냥한 '싱글 제로'였다면, 더블 제로는 소련의 SS-12, SS-23(오카)과 미국의 퍼싱 1A를 추가 포함시켰다. 이 양보로 조약의 골격이 완성되었으나, 독일 퍼싱 1A의 운명을 둘러싼 콜 정권 내부의 분열과 소련군이 사거리 500km 미만인 오카를 희생양으로 여긴 반발을 촉발했다.

상세

배경

1981년 11월 레이건이 제안한 '제로 옵션'은 미국이 퍼싱 II와 지상발사 순항미사일(GLCM) 배치를 포기하는 대가로 소련이 SS-20, SS-4, SS-5 등 중거리미사일을 철폐하라는 구상이었다. 소련은 이를 거부했으나, 1986년 10월 레이캬비크 정상회담에서 고르바초프가 원칙적으로 수용했다. 그러나 이것은 사거리 1,000–5,500km의 중거리미사일만을 대상으로 한 '싱글 제로'였다.

더블 제로의 등장

1987년 4월 모스크바를 방문한 슐츠 국무장관과의 회담에서 고르바초프는 단거리미사일(500–1,000km)까지 포함하는 '더블 글로벌 제로'를 처음 시사했다. 7월 22일 정치국에서 공식 채택되었고, 이튿날 대외 발표되었다. 이로써 소련의 SS-12 '스케일보드', SS-23 '오카', 미국의 퍼싱 1A가 모두 폐기 대상이 되었다.

정치적 파열

서독의 콜 총리는 자국에 배치된 72기 퍼싱 1A 미사일을 포기해야 한다는 점에서 당내 보수파와 충돌했다. 퍼싱 1A의 핵탄두는 미국이 통제했지만 발사대는 서독 소유였기에, 독일의 핵억지력 일부로 간주되었다. 콜은 8월 26일 미·소가 INF를 전면 철폐하면 서독도 퍼싱 1A를 폐기하겠다고 선언함으로써 교착을 타개했다.

한편 소련군 지도부는 오카(사거리 450km로 공식 분류상 INF 범위 밖)를 포함시키기로 한 고르바초프의 결정에 격렬히 저항했다. 오카는 소련의 최신예 작전전술미사일이었고, 아흐로메예프 원수는 "우리의 가장 현대적인 무기를 희생시키는 것"이라고 항의했다. 고르바초프는 군부의 반대를 무릅쓰고 이 양보를 밀어붙였으며, 이는 소련 측의 일방적 희생이라는 인식을 남겨 이후 조약 비판론의 씨앗이 되었다.

결과

1987년 9월 셰바르드나제-슐츠 워싱턴 회담에서 최종 합의가 도출되었고, 12월 8일 INF 조약이 서명되었다. 더블 제로는 단일 조약으로 한 범주의 핵무기 전체를 폐기한 최초의 사례를 가능하게 했으며, 냉전 종식을 향한 결정적 전환점으로 평가된다.

관련 역사 사건

출처

  1. britannica.com Britannica: after five years of acrimonious negotiation, the Soviet Union accepted elimination of all land-based IRBMs and, in July 1987, expanded it to include a 'double-zero' option covering shorter-range missiles (US Pershing 1A, Soviet SS-12 and SS-23).
  2. 위키백과 (영문) Wikipedia: treaty background on Zero Option, Reykjavík Summit double-zero agreement, Kohl's August 1987 Pershing 1A decision.
  3. 위키백과 (러시아어) Russian Wikipedia: в феврале 1987 года СССР предложил проект «двойного нуля»; detailed account of the Soviet decision to include OTR-23 Oka (SS-23), the Soviet military's resistance, and the final September 1987 Shevardnadze-Shultz compromise.
  4. hoover.org Hoover Institution (Stephan Kieninger): Shultz's April 1987 Moscow meeting with Gorbachev where 'global double zero' was first discussed; Kohl's coalition divide over Pershing 1A; NATO internal debate on double zero.
  5. 위키백과 (영문) Wikipedia: the INF Treaty fulfilment under the 'Double-Zero' deal was widely seen as a key step towards ending the Cold W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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