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ser Depesche / Dépêche d'Ems · 1870년 7월 13일

엠스 전보

Ems Dispatch

1870년 7월 13일 바트엠스에서 프로이센 국왕 빌헬름 1세가 프랑스 대사 베네데티의 요구를 거절한 사실을 베를린에 알린 전보와, 비스마르크가 이를 줄여 그날 저녁 언론에 공개한 발표문. 왕이 대사를 모욕했다는 인상을 주어 7월 19일 프랑스의 선전포고와 보불전쟁을 불렀다.

상세

1866년 전쟁 뒤 프랑스는 「사도바의 복수」를 외쳤고, 1868년 에스파냐 왕위가 비자 호엔촐레른지크마링겐 가의 레오폴트 공이 후보로 떠올랐다. 프랑스의 항의로 레오폴트가 7월 11일 후보를 거두자 외무장관 그라몽은 한 걸음 더 나가, 프로이센 왕이 앞으로 어떤 호엔촐레른도 내세우지 않겠다고 보장하고 나폴레옹 3세에게 사과 편지를 보내라고 요구했다. 7월 13일 아침 바트엠스의 쿠어잘 산책로에서 베네데티가 왕을 붙들고 이 요구를 전했고, 왕은 「언제까지나(à tout jamais)」 약속할 수는 없다며 정중히 거절한 뒤 그날 더는 대사를 접견하지 않고 부관을 통해 할 말이 없다고 알렸다. 외무부 고문 하인리히 아베켄이 이 경위를 왕의 지시에 따라 베를린의 비스마르크에게 전보로 보냈고, 왕은 이 내용을 대사관과 언론에 알려도 좋다고 덧붙였다.

비스마르크는 아베켄의 문안에서 왕의 유화적 표현을 지우고, 프랑스가 전쟁 위협 아래 요구했으며 왕이 거부했다는 요지만 남긴 발표문을 그날 저녁 언론과 각국 공사관에 돌렸다. 발표문은 베네데티가 더 무례하고 왕이 더 퉁명스러웠다는 인상을 양쪽에 주었다. 아바스 통신의 프랑스어 번역은 고급 부관을 뜻하는 「Adjutant」를 하사관을 뜻하는 「adjudant」로 옮겨 모욕의 인상을 키웠고, 이 번역이 7월 14일 혁명 기념일 아침 신문에 실렸다. 비스마르크는 자기 발표문이 「갈리아 황소에게 붉은 천 같은 효과」를 낼 것이라고 말했다. 파리의 군중은 전쟁을 외쳤고 15일 동원령, 19일 선전포고가 이어졌다. 영어 위키백과는 프랑스의 선전포고에 이 전보가 「오히려 무관했다」며 나폴레옹 3세가 정권 안정을 위해 이미 전쟁을 결심했다고 보지만, 비스마르크가 여러 선택지를 열어 두다 기회가 오자 감정을 자극할 뜻으로 공개했다는 점에서는 그의 책임도 인정한다. 비스마르크는 뒤에 「이 문서가 전쟁의 원인으로 제시되어야 했다」고 썼고, 베네데티는 1871년 『나의 프로이센 사명』으로 자신을 변호했다.

관련 인물

관련 역사 사건

출처

  1. 위키백과 (영문)
  2. 위키백과 (영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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