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omalainen puolue (sv. Finska partiet) · 1860년대–1918

핀란드당

Finnish Party

핀란드 대공국에서 활동한 보수적 핀란드어 중심주의(펜노만) 정당. 1860년대 언어 분쟁에서 생겨 핀란드어를 스웨덴어와 나란히 공용어로 만드는 것을 목표로 했고, 1906년에야 근대 정당으로 조직되었다. 청년핀란드파가 갈라져 나간 뒤 러시아화 정책에 순응 노선을 택해 「구핀란드당」으로 불렸으며, 1918년 말 당원 대부분이 국민연합당으로 옮기면서 활동을 멈추었다.

상세

핀란드어 출처에 따르면 핀란드당은 유럽에서 커진 민족주의 사상과 J. V. 스넬만의 사상에서 비롯한 펜노만 운동에서 생겨났다. 1860–1870년대 언어 분쟁 속에서 형성되었지만 20세기 초까지는 조직 없는 의회 정파에 가까웠고, 1906년에야 근대 정당으로 조직되었다. 주요 이념가는 스넬만, 위리외 사카리 위리외코스키넨, J. R. 다니엘손칼마리였고, 「수오메타르」와 뒤의 「우시 수오메타르」가 기관지였다. 19세기 말 내내 위리외코스키넨이, 그가 1903년 죽은 뒤에는 다니엘손칼마리가 당을 이끌었다.

1880년대 말 당의 젊은 세대는 자유주의의 영향을 받아 요나스 카스트렌과 라우리 키베캐스를 중심으로 청년핀란드파를 이루었고, 1894년 「당 안의 당」이 되었다가 1905년 완전히 갈라져 나갔다. 압제기(1899–1905, 1908–1917) 동안 청년핀란드파는 헌법을 내세운 수동적 저항을 택한 반면, 남은 당은 러시아 당국에 양보하는 순응 노선을 택해 「구핀란드파」로 불렸다. 순응파는 러시아화 속에서도 관직을 핀란드인 손에 두는 것을 중시했고, 저항이 러시아화를 키우고 핀란드가 감당할 수 없는 폭력 충돌로 이어질 것을 우려했다.

지지층은 핀란드어를 쓰는 지식인, 특히 관료와 땅을 가진 부유한 핀란드어 사용 농민이었고, 신분제 의회에서는 성직자와 농민 신분에서 다수를 차지했다. 영어 출처에 따르면 1906년 의회 개혁 뒤 핀란드당은 1907–1917년 선거에서 꾸준히 가장 큰 비사회주의 정당이자 사회민주당 다음의 제2당이었지만, 의석은 1907년 59석에서 1917년 32석으로 줄었다.

영어 출처에 따르면 1917년 독립과 1918년 내전 뒤 당 지도부는 입헌군주제 지지로 돌아서 독일 왕자를 국왕으로 세우려 했지만, 독일의 패전으로 계획은 무산되었다. 1918년 12월 지지자 다수는 보수·군주제파의 국민연합당으로, 소수는 자유·공화파의 국민진보당으로 갈라졌다. 핀란드어 출처는 2차 세계대전 뒤 대통령이 된 구핀란드파 출신 J. K. 파시키비가 자신의 새 대소 정책(파시키비 노선)이 압제기 순응 노선과 분명히 맞닿아 있다고 보았다고 적는다.

소속 인물

관련 인물

출처

  1. fi.wikipedia.org
  2. 위키백과 (영문)
  3. fi.wikipedi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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