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unakaarti · 1905–1920

핀란드 적위대

Finnish Red Guards

핀란드 노동운동의 준군사 조직. 1905년 총파업 때 처음 생겼다가 이듬해 해산되었고, 1917년 2월 혁명 뒤 노동자 질서수비대로 다시 조직되었다. 1918년 1월 헬싱키 적위대와 합쳐 「핀란드 적위대」가 되어 내전에서 적색 핀란드의 군대로 싸웠으나 5월 백군과 독일군에 패했고, 1920년까지 조직된 세력으로서 사라졌다.

상세

1905년 총파업 때 치안을 맡은 국민수비대가 노동계급의 적위대와 부르주아 쪽 보호대로 갈라졌고, 1906년 8월 스베아보리 반란 중 하카니에미에서 두 조직이 총격전을 벌인 뒤 상원은 둘 다 금지했다. 1917년 여름 식량난 속 농업 파업과 7월 13일 후이티넨 충돌 뒤 우익 농민들이 보호대를 만들자, 노동운동은 노동자 질서수비대로 맞섰다. 10월 20일 노동조합연맹의 호소 뒤 3주 만에 수비대는 237개, 3만 명을 넘었고 11월 총파업이 끝날 무렵 4만~5만 명이 되었다. 러시아 제국 군 중위 출신 기자 알리 알토넨이 첫 총사령관이었다. 1918년 1월 6일 헬싱키 수비대가 사회민주당에서 독립해 헬싱키 적위대로 이름을 바꾸었고, 1월 25일 상원이 보호대를 정부군으로 선언하자 노동운동은 이를 노동계급에 대한 선전포고로 받아들였다. 수비대들은 「핀란드 적위대」로 통합되었고, 26일 밤 헬싱키 노동자회관 탑에 붉은 등을 켜 혁명을 알렸다.

지휘권은 알토넨에서 에로 하팔라이넨으로, 3월 20일 에이노 라햐·아돌프 타이미·에베르트 엘로란타의 3인 지도부로, 4월 10일 독재 권한을 받은 쿨레르보 만네르에게로 넘어갔다. 영어 출처는 전력을 개전 때 3만~4만 명, 절정기 8만~12만 명으로 추산하며, 여기에는 여성 전투원 2,000~2,600명이 포함된다. 대원은 산업 노동자와 토지 없는 농촌 노동자, 소작농이었고, 장교를 선거로 뽑아 규율이 느슨했으며 무기 대부분을 러시아 군에게서 얻었다. 이름은 같지만 러시아의 적위대와는 따로 핀란드 사회민주당 지역 조직과 노동조합을 통해 모집된 조직이었고, 러시아인의 참여는 적었다. 핀란드에 남아 있던 러시아 제국 군과 발트 함대 병력 약 4만 명 가운데 적위대에 들어간 사람은 장교 수십 명을 포함해 수백 명뿐이었고, 대부분은 귀국만을 바랐다. 알토넨이 볼셰비키에게서 사들인 소총 1만 5천 정 등을 실은 열차가 2월 초 도착했다. 탐페레에서 1만~1만 1천 명이 포로가 되었고, 전쟁이 끝난 뒤 약 8만 명이 포로가 되어 1만 2천~1만 4천 명이 수용소에서 병과 영양실조, 처형으로 죽었다. 1만~1만 3천 명은 소비에트 러시아로 피했고, 그 일부는 영국이 만든 무르만스크 군단이나 에스토니아 독립전쟁에 나선 붉은 군대 제7군에서 핀란드 백군 의용병과 싸웠다.

관련 인물

관련 역사 사건

출처

  1. 위키백과 (영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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