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인터내셔널
First International
1864년 런던에서 창립된 최초의 국제적 노동자 조직인 국제노동자협회. 마르크스가 창립 선언과 규약을 기초하고 총평의회에서 실질적 지도자 역할을 했다. 각국의 노동조합, 협동조합, 사회주의 그룹을 느슨하게 묶었으나, 국가와 정치투쟁을 둘러싼 마르크스파와 바쿠닌파의 대립 끝에 1872년 헤이그 대회에서 분열했고, 총평의회를 뉴욕으로 옮긴 뒤 1876년 필라델피아 회의에서 해산했다.
상세
무엇을 하려던 조직인가
1864년 9월 런던 세인트 마틴스 홀에서 영국 노동조합 지도자들과 프랑스 노동자 대표들이 국제 조직을 만들기로 하면서 국제노동자협회가 출발했다. 배경은 실용적이었다. 파업 때 외국인 파업 파괴자를 들여오는 관행을 막고, 폴란드 봉기 지지처럼 나라를 넘는 정치적 연대를 조직하는 것이다. 마르크스는 창립 집회에 초청받은 뒤 창립 선언과 규약을 기초했고, 이후 총평의회의 실질적 중심이 되었다. 창립 선언의 결론이 협회의 강령을 요약한다. 노동계급의 해방은 노동계급 자신의 사업이며, 그것은 한 나라 안에서 완결될 수 없다는 것이다.
협회는 오늘날의 정당 같은 조직이 아니었다. 노동조합, 협동조합, 교육 협회, 망명자 그룹이 나라별 지부로 느슨하게 묶였고, 회원 수 통계조차 정확하지 않다. 그런데도 각국 정부는 이 조직을 실제보다 훨씬 크게 보았다. 특히 1871년 파리코뮌 이후 협회가 코뮌의 배후라는 소문이 퍼지면서, 마르크스가 총평의회 이름으로 쓴 『프랑스 내전』은 협회를 유럽에서 가장 악명 높은 조직으로 만들었다.
마르크스와 바쿠닌은 왜 갈라섰나
1868년 바쿠닌이 합류하면서 협회 안에 두 개의 노선이 자랐다. 마르크스 쪽은 노동계급이 독자적 정당을 만들어 정치권력을 장악해야 한다고 보았다. 바쿠닌 쪽은 모든 국가권력이 새로운 지배를 낳는다고 보았고, 정치투쟁 대신 경제적 직접행동과 국가의 즉각적 폐지를 내세웠다. 여기에 조직 문제가 겹쳤다. 총평의회의 권한을 강화하려는 시도를 바쿠닌파는 중앙집권적 지배로 받아들였다.
1872년 헤이그 대회에서 마르크스파는 다수를 확보해 바쿠닌의 제명과 정치투쟁 의무화를 통과시켰고, 총평의회를 뉴욕으로 옮겨 바쿠닌파의 장악을 차단했다. 스위스, 스페인, 이탈리아, 벨기에의 연합체들은 이 결정을 거부하고 반권위주의 인터내셔널로 갈라섰다. 몸통을 잃은 뉴욕 총평의회는 1876년 필라델피아 회의에서 협회의 해산을 선언했다.
무엇을 남겼나
제1인터내셔널은 조직으로서는 12년밖에 가지 못했지만, 이후의 모든 국제 조직이 자신의 계보를 여기에 댔다. 1889년의 제2인터내셔널은 스스로를 그 재건으로 이해했고, 1922년의 아나르코생디칼리슴 국제노동자협회는 이름 자체를 되살렸다. 마르크스주의와 아나키즘이 별개의 운동으로 갈라진 지점도 헤이그 대회다. 이후 사회주의 운동사의 큰 분열들이 반복해서 보여 주는 형태, 곧 강령 논쟁과 조직 통제 문제가 겹쳐 갈라서는 방식의 원형이 여기서 만들어졌다.
관련 용어
관련 인물
출처
- Henryk Katz, The Emancipation of Labor: A History of the First International (Greenwood Press, 1992)
- 마르크스주의 인터넷 아카이브 Marxists Internet Archive: documents of the International Working Men's Association
- Encyclopaedia Britannica: First Internationa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