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크푸르트 국민의회
Frankfurt National Assembly
1848년 5월 18일 프랑크푸르트 파울 교회에서 개원한 최초의 전 독일 선출 의회. 통일 독일의 헌법을 만들기 위해 독일 연방 각국에서 남성 보통선거(대개 간접선거)로 뽑혔다. 임시 중앙권력과 요한 대공의 섭정을 세우고 1848년 12월 기본권, 1849년 3월 제국헌법을 의결했으나 프로이센 국왕이 황제 왕관을 거부하면서 무너졌고, 1849년 6월 슈투트가르트의 잔여 의회가 뷔르템베르크군에게 해산되었다.
상세
예비의회는 인구 5만 명당 1명, 649석을 정했으나 체코인 다수 선거구의 거부로 585석이 되었다. 교체가 잦아 활동한 의원 총수는 799~830명으로 집계가 갈린다. 관리·법률가·교수가 많아 「교수 의회」라 불렸고, 의원들은 카페 밀라니(우파), 카지노(우익 중도), 뷔르템베르거 호프(좌익 중도), 도이처 호프와 도너스베르크(좌파) 같은 모임 장소 이름의 파벌로 갈렸다. 초대 의장은 하인리히 폰 가게른이었다.
의회에는 세금 징수권도 군대도 없었다. 1848년 9월 말뫼 휴전 수용은 민주파와의 결별을 낳았고, 오스트리아를 넣을지를 두고 대독일·소독일 해법이 맞섰다. 1849년 3월 28일 소독일 세습 황제제 헌법을 공포하고 프로이센 국왕을 황제로 뽑았으나 4월 거부당했다. 오스트리아와 프로이센이 의원을 소환한 뒤 남은 의원들은 5월 30일 슈투트가르트로 옮겼고 6월 18일 해산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