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크푸르트 국민의회 좌파를 이끌다 빈 10월 봉기에 가담해 총살된 민주주의자
1807년 쾰른의 가난한 통장이 집안에서 태어나 여러 직종을 전전했고, 1832년 극단을 따라 라이프치히로 가 극장 회계원이 되었다. 1839년 무렵부터 작센 민족자유주의 진영의 지도자로 떠올라 웅변과 조직력으로 작센 야당을 키웠고, 1845년 라이프치히에서 독일 가톨릭 운동의 첫 교회 회의를 조직했다. 1848년 프랑크푸르트 예비의회 부의장을 맡았고 국민의회에서는 좌파의 지도자로 말뫼 휴전에 강하게 반대했다. 10월 의회 대표로 빈에 가 혁명군에 가담했다가 빈디슈그레츠의 빈 점령 뒤 11월 4일 체포되었고, 의원 면책특권을 주장했으나 11월 9일 총살되었다. 그의 죽음은 1848년 혁명의 좌절을 상징하게 되었다.
주요 활동과 소속
- 1839–1847
-
1848
입법·국가 대표
경력 연표
- 1832라이프치히 극장 직원
- 1839작센 민족자유주의 진영 지도자
- 1848프랑크푸르트 예비의회 부의장, 국민의회 좌파 지도자
- 1848빈 10월 봉기 가담, 11월 9일 총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