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도시기 총노선
General Line for the Transition Period
중화인민공화국 건국(1949)부터 사회주의 개조의 기본적 완성까지를 과도시기로 규정하고, 사회주의 공업화(일화)와 농업·수공업·자본주의 공상업의 사회주의적 개조(삼개조)를 점진적으로 달성하는 것을 당의 총노선·총과업으로 삼은 강령이다. 실질은 생산수단을 국가 통제 아래 두는 것이었다. 1953년 6월 15일 마오쩌둥이 처음 비교적 완전하게 제시했고, 같은 해 12월 당 중앙이 최종 문구를 확정했다.
상세
제기와 확정
1953년 6월 15일, 마오쩌둥은 중국공산당 중앙정치국 확대회의에서 과도시기 총노선과 총과업을 처음으로 비교적 완전하게 제시했다. 그는 총노선이 모든 사업을 비추는 등대이며 여기서 벗어나면 좌경 또는 우경 오류가 생긴다고 말하고, '신민주주의 질서를 확립하자'는 견해를 비판했다. 같은 해 12월 당 중앙이 총노선의 완전한 문구를 확정했고, 1954년 2월 제7기 중앙위원회 제4차 전원회의와 같은 해 9월 제1기 전국인민대표대회 제1차 회의를 거쳐 중화인민공화국 헌법에 반영되어 국가 전체의 통일된 의지가 되었다.
내용: 일화삼개조
총노선은 '일화삼개조'로 요약된다. 일화는 점진적으로 달성할 사회주의 공업화이고, 삼개조는 농업·수공업·자본주의 공상업의 사회주의적 개조이다. 다른 표현으로는 '일체양익'이라 하여 사회주의 공업화를 몸통으로, 세 가지 개조를 양 날개로 묶었다. 핵심 목표는 사회주의적 소유를 국가의 유일한 경제적 기초로 만드는 것이었다.
사회주의적 개조는 1953~1956년에 시행된 삼대개조로 구체화되었다. 농업에서는 소련을 본떠 상호조합에서 초급·고급 협동조합으로 나아가는 세 단계의 집단화가 추진되었고, 수공업 개조는 1953년 11월에 시작되었으며, 자본주의 공상업 개조는 1954년부터 '평화적 속죄'와 국가자본주의 형식을 통해 본격화되었다. 1956년 말 농가의 96.3퍼센트가 협동조합에 가입하고 수공업자의 90퍼센트 이상이 협동조합에 참여하면서 사회주의 제도가 경제적 측면에서 기본적으로 확립되었다.
일정과 논쟁
과도시기에는 미리 정해진 종료 연도가 없었다. 마오의 표현은 공업화와 사회주의적 개조를 기본적으로 완성하는 데 '10년에서 15년 또는 그보다 조금 더' 걸린다는 것이었고, '제16년에 자본주의 공상업을 갑자기 몰수하는 것이 아니라 점진적 방법을 쓰는 것'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중국은 1952~53년부터 약 4년 만에 삼대개조를 기본적으로 완수해 발표된 일정보다 훨씬 앞서 1956년에 이행을 완료했다고 선언했다.
당초 당은 신민주주의 시기가 10~15년, 길게는 20~30년 지속되리라 보았으나 마오는 1952년 가을 이행을 즉시 시작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1955년 중반에는 협동화를 늦출 것인가 가속할 것인가를 둘러싸고 당내 이견이 갈렸고, 마오의 가속 노선이 우세해지면서 1955년 하반기부터 1956년 말까지가 농업 집단화의 가장 빠른 국면이 되었다. 자발적 참여에서 가속으로, 나아가 1958년에는 강제로 나아갔다는 분석(린이푸, 이 사건 서술에서 인용)도 있다.
평가
평가는 갈린다. 당 공식 역사학, 즉 1981년 역사결의와 2011년 『중국공산당 역사』 제2권은 총노선을 역사적 필연성을 반영한 것으로, '완전히 정확한' 것으로, 전환점적 의의를 지닌 것으로 긍정한다. 일부 연구자들은 마오의 1952~53년 전환을 자본주의의 발전을 허용하는 '간접적 이행'에서 사유제를 즉시 폐지하는 '직접적 이행'으로 가는 전략적 전환으로 설명하고, 사학계에서는 신민주주의가 장기간 유지될 예정이었는지 아니면 전술에 불과했는지를 두고 여전히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