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화
Globalization
여러 나라의 경제·시장·사회·문화가 서로 더 깊이 얽히고 통합되는 과정. 무역 장벽의 축소, 자본 이동의 자유화, 운송과 정보통신 기술의 발전이 이를 이끈다. 경제 세계화는 상품·자본·서비스·기술·정보가 국경을 넘어 널리 움직이는 것을 가리킨다. 지지자는 성장과 사회 발전을 내세우고, 비판자는 불평등과 환경 파괴, 문화적 동화를 지적한다. 한국에서는 김영삼 정부의 개방 정책 구호(1995)로도 쓰였다.
상세
세계화라는 말은 1930년대부터 영어에 나타났지만 뜻이 분명하지 않았다. 1960년대 초 프랑스 경제학자 프랑수아 페루가 비슷한 개념을 썼고, 1980년대 중반 시어도어 레빗이 이 말을 경영계에 널리 퍼뜨렸다. 1990년대에 이르러 냉전 뒤 커져 가는 국제적 연결을 가리키는 말로 흔히 쓰이게 되었다. 이 현상 자체는 더 오래되었다. 1848년 카를 마르크스는 『공산당 선언』에서 「부르주아지는 세계 시장의 착취를 통해 모든 나라의 생산과 소비에 세계주의적 성격을 주었다」고 썼다. 대규모 세계화는 운송 혁명과 함께 1820년대에 시작되었고, 19세기의 세계화는 제국주의와 식민주의가 결정적으로 형성했다.
제2차 세계대전 뒤 브레턴우즈 회의가 국제 통화·무역·금융의 틀을 놓았고,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과 그 후신 세계무역기구(WTO) 아래 나라들은 무역 장벽을 낮추고 경상 계정과 자본 계정을 열었다. 1990~2010년에는 정보통신 혁명, 무역 자유화, 제조업의 신흥국(특히 중국) 이전으로 세계화가 빠르게 진행되었다. 경제 세계화는 생산·금융·시장·기술·기업과 사람의 세계화로 나뉘며, 선진국 경제가 외국인 직접 투자로 개발도상국과 통합된 것이 1990년대 이후 붐을 떠받쳤다.
한국에서 「세계화」는 정책 구호이기도 했다. 김영삼 정부는 1993년 우루과이 라운드를 타결하고, 1995년 1월 낙후된 분야의 경쟁력을 높인다며 세계화추진위원회를 출범시켰으며, 1995년 WTO, 1996년 OECD에 가입했다. 영어 위키백과는 이를 「세계화」라는 국제화 정책으로 소개한다. 금융·자본 시장 개방은 단기 외채의 급증으로 이어졌고, 1997년 외환위기 뒤 이 개방의 속도와 순서가 큰 논쟁거리가 되었다.
세계화를 둘러싼 평가는 엇갈린다. 지지자는 성장과 빈곤 감소를 내세운다. 1980년 이후 세계화에 나선 개발도상국의 1인당 성장률은 1960년대 1.4%에서 1990년대 5.0%로 높아졌다는 계산이 있다. 경제학자 대니 로드릭은 1997년 『세계화는 너무 멀리 갔는가?』에서 세계 시장과 사회 안정 사이의 긴장을 지적했고, 2000년 세계 경제의 「정치적 삼자택일」 개념을 내놓았다. 조지프 스티글리츠는 IMF가 너무 이른 자본 시장 자유화를 강요했다고 비판했다. 1990년대 말에는 다국적 기업과 규제 없는 금융 시장에 반대하는 반세계화 운동, 이른바 「신자유주의 세계화 반대 운동」이 일어나 시애틀·제노바 등지에서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 세계체제론을 비판한 윌리엄 I. 로빈슨은 1980년대에 시작된 새로운 형태의 세계화가 생산을 국경 너머로 쪼갠다고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