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만의 파리 개조
Haussmann's renovation of Paris
1853~1870년 나폴레옹 3세의 지시로 센 도지사 조르주외젠 오스만이 벌인 파리 개조 사업. 도심의 좁은 골목과 낡은 구역을 헐고 넓은 대로, 공원과 광장, 상하수도를 만들었으며, 1860년 성벽 안 교외를 합쳐 파리를 20개 구로 넓혔다. 집세 상승과 가난한 주민의 도심 밖 이주, 바리케이드를 막으려는 군사적 의도를 두고 당대부터 비판을 받았다.
상세
공사는 도심을 동서와 남북으로 가르는 「대십자로」에서 시작해, 1830~1848년 봉기가 잦았던 생탕투안 문밖과 생트주느비에브 언덕 일대로 넓어졌다. 오스만은 세바스토폴 대로를 두고 「폭동과 바리케이드의 동네」를 도려냈다고 회고록에 썼다. 17년 동안 건물 1만 9,730채가 헐리고 3만 4천 채가 새로 지어졌으며, 불로뉴·뱅센 숲과 뷔트쇼몽·몽수리 공원이 생겼다.
비용은 크게 불어났고 오스만은 의회 승인 없는 채권으로 돈을 마련했다. 1867년 쥘 페리는 이를 「오스만의 환상적인 회계」라고 비꼬았고, 1868년 법으로 파리 재정은 입법원의 감독을 받게 되었으며, 1870년 1월 오스만은 해임되었다. 엥겔스는 1872년 『주택 문제』에서 「오스만」을 노동자 구역에 대로를 뚫어 주택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다른 곳으로 옮기기만 하는 부르주아적 방식의 이름으로 썼다. 오스만을 옹호하는 쪽은 동서의 계층 분화가 그 이전부터 진행되었고, 동쪽 노동자 구역에도 대로와 공원, 학교를 똑같이 지었다고 반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