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imosodat · 1918–1922

헤이모소다트

Heimosodat

「친족 전쟁」이라는 뜻의 핀란드어로, 1918~1922년 핀란드 의용병이 핀란드와 맞닿은 옛 러시아 제국 영토, 곧 다른 핀계 민족이 많이 사는 동카렐리야·잉그리아·페차모와 에스토니아에서 벌인 일련의 무력 충돌과 사적 원정을 가리킨다. 핀란드 국가는 공식 당사자가 아니었지만, 출처에 따라 약 9,000~1만 명의 의용병이 참여했다.

상세

1918년 비에나 원정에서는 3월 10일 쿠르트 마르티 발레니우스의 부대가 북비에나 국경을 넘었고, 21일 국경을 넘은 칼 빌헬름 말름의 부대는 비에나의 켐 근처까지 갔으나 4월 10일 공격에서 밀려났다. 영국의 선전과 식량 원조로 카렐리야인들이 돌아서면서, 7월 말름을 대신한 토이보 쿠이스마의 원정대도 10월 2일 핀란드로 물러났다. 1918년과 1920년의 페차모 원정은 모두 철수로 끝났다. 1919년 4월 21일 군나르 폰 헤르첸이 이끈 아우누스 원정대는 올로네츠를 빠르게 차지하고 페트로자보츠크 앞까지 갔으나 주민의 호응이 적어 6월 말 물러났다. 에스토니아 독립전쟁에는 한스 칼름의 「북방의 아들들」과 마르틴 엑스트룀의 제1핀란드의용군이 참전했고, 1918~1920년 잉그리아인 봉기에서는 북잉그리아 연대가 몇몇 마을을 지켜 키르야살로 공화국을 세웠다. 영어 출처는 무르만스크 군단과 1919년의 페트로그라드 진격도 이 목록에 넣는다. 마지막은 1921~1922년 동카렐리야 봉기로, 2,500명의 숲 게릴라에 핀란드 의용병 약 500명이 지휘관으로 가담했으나 2만 명의 소비에트군에 무너졌다.

동기는 친족 민족 사상, 반볼셰비즘, 대핀란드 사상, 그리고 단순한 모험심이었다. 영어 출처는 갓 독립한 핀란드에서 다른 핀계 민족의 독립을 도울 의무를 느낀 민족주의·실지 회복주의와, 내전의 상처로 많은 백색 지지자가 급진적 민족주의자가 된 사정을 함께 든다. 핀란드어 출처에 따르면 약 660명의 핀란드인이 죽었다. 레폴라(1918)와 포라얘르비(1919)가 핀란드에 합류했지만 성과를 거둔 것은 에스토니아 독립전쟁뿐이었다. 전쟁은 동카렐리야 봉기를 빼면 1920년 타르투 조약으로 끝났고, 친족 활동가들은 이 조약을 「수치의 강화」라 불렀다. 동카렐리야인과 잉그리아인 2만 명 가까이가 핀란드로 피했고, 이를 계기로 대핀란드 사상을 이어 가려는 아카데믹 카렐리야 협회가 생겼다. 동카렐리야 문제는 1920년대 초 핀란드와 소비에트 러시아의 관계를 괴롭혔다. 영어 출처는 2차 세계대전의 고된 5년이 이 열기를 식혔다고 본다.

관련 역사 사건

출처

  1. 위키백과 (영문)
  2. fi.wikipedi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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