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mpromesso storico · 1973–1980

역사적 타협 (이탈리아)

Historic Compromise (Italy)

이탈리아 공산당 서기장 엔리코 베를링구에르가 1973년 제안한 기독교민주당과의 협력 노선. 칠레 쿠데타로 아옌데 정부가 무너진 것을 보고, 서방 민주주의 나라에서 마르크스주의 좌파는 온건 세력과 동맹하지 않고는 통치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1976년 총선에서 공산당이 정점에 오르자 안드레오티가 이끈 기독교민주당의 「불신임하지 않는 정부」와 「국민 연대」 정부로 이어졌으나, 공산당은 끝내 입각하지 못했다. 1978년 알도 모로의 납치·살해 뒤 동력을 잃었고 1980년 베를링구에르가 끝을 선언했다.

상세

제안

1973년 베를링구에르는 공산당 잡지 『리나시타』에 세 편의 글을 실어 기독교민주당과의 「민주적 동맹」을 제안했다. 칠레 쿠데타가 계기였고, 같은 해의 석유 위기가 서방 복지국가와 취약한 자유민주주의 자체를 위협한다는 우려도 작용했다. 이 제안은 공산당과 사회당의 동맹을 뜻하는 「좌파 대안」 전략을 최종적으로 버린 것이기도 했다. 공산당 쪽에서는 1944년 톨리아티의 살레르노 전환 이후 전후 연립정부의 연장선으로 볼 수도 있었다.

실행과 끝

기독교민주당의 알도 모로는 이 구상을 받아들였지만, 그에게 「제3단계」는 공산당만이 아니라 공화국의 모든 정치 세력을 끌어들이는 것이었다. 1976년 총선 뒤 공산당은 안드레오티 정부를 불신임하지 않는 방식으로 다수파에 들어갔고, 1978년 정부가 물러나 공산당이 더 유기적으로 다수파에 들어가는 길을 열었지만 공산당 장관은 끝내 없었다. 모로의 납치와 살해, 두 당 안의 불만이 겹치며 공산당은 1979년 야당으로 돌아갔다. 같은 시기 공산당은 스페인·프랑스 공산당과 유로코뮤니즘을 내세워 소련과 거리를 두었다.

관련 인물

출처

  1. 위키백과 (영문)
  2. it.wikipedia.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