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국민회의
Indian National Congress
1885년 12월 28일 봄베이에서 창립된 인도의 정당. 1920년 무렵부터 마하트마 간디의 지도 아래 인도 독립운동을 이끌었다. 1947년 독립 뒤 오랫동안 집권당으로서 자와할랄 네루를 비롯한 총리 6명을 냈고, 1990년대 이후 인도 인민당(BJP)이 주된 경쟁자가 되었다.
상세
1883년 퇴직한 영국 관리 앨런 옥타비언 흄이 인도인의 이익을 대표할 기구를 제안했고, 1885년 12월 28~31일 봄베이에서 첫 회의가 열렸다. 대표 72명이 참석했고 우메시 찬드라 바네르지가 첫 의장이 되었다. 초기에는 영국 지배 안에서 행정의 인도인화와 개혁을 요구하는 온건파가 주도했으나, 1905년 벵골 분할 뒤 라지파트 라이·발 강가다르 틸라크·비핀 찬드라 팔이 이끄는 급진파가 대두했다.
1915년 남아프리카에서 돌아온 간디가 합류한 뒤 국민회의는 대중운동이 되었다. 간디는 1920년 킬라파트 운동과 손잡고 시민 불복종(사티아그라하)을 벌였다. 1929년 자와할랄 네루가 의장을 맡은 라호르 대회는 완전 독립(푸르나 스와라지)을 목표로 선언했다. 1937년 주 선거에서 11개 주 가운데 8개 주에서 집권했지만, 1939년 총독이 인도인과 상의 없이 인도를 제2차 세계대전 참전국으로 선언하자 주 내각들이 사퇴했다. 같은 해 간디는 국민회의 사회당 등 사회주의 그룹과 수바스 찬드라 보스를 축출했다. 1942년 8월 간디가 「인도를 떠나라」 운동을 선언하자 식민 정부는 지도부를 대량 체포했다.
1947년 독립 뒤 국민회의는 지배 정당이 되어 1977년까지 중앙 정권을 지켰다. 1951년부터 1964년 죽을 때까지 당을 이끈 네루는 계획위원회와 5개년 계획, 혼합경제, 세속국가, 비동맹 외교를 추진했다. 1969년 인디라 간디 파가 갈라져 나가 국민회의(R)를 만들었고, 이 파가 1971년 총선에서 크게 이겨 주류가 되었다. 1975~1977년 인디라 간디의 비상사태 뒤 1977년 처음으로 자나타 연합에 정권을 잃었다.
1980년 재집권했다가 1989년 다시 졌고, 1991년 나라시마 라오 정부는 경제 자유화로 방향을 틀었다. 2004년과 2009년 총선 뒤 만모한 싱이 이끄는 통일진보연합 정부를 세웠으나, 2014년 총선에서는 543석 가운데 44석에 그쳤다. 2024년 총선에서 99석을 얻어 공식 야당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