夹边沟农场 · 1957.11–1961.10

자볜거우 농장

Jiabiangou labour camp

간쑤성 주취안 북동쪽 바단지린 사막 가장자리에 있던 노동교양 농장. 1957~1960년 간쑤 각지의 「우파」 약 3천 명이 보내졌고, 대기근 속에 1960년 하반기부터 수용자 대다수가 굶어 죽었다. 사망자는 약 2,500명으로 추산된다. 1961년 10월 폐쇄되었고 당국은 사망 원인을 자연사로 꾸몄다.

상세

자볜거우는 1954년 3월 40~50명을 가두도록 지은 노동개조 농장으로 출발했다. 1957년 하반기 반우파 투쟁이 확대되면서 우파를 받는 노동교양 농장이 되어, 11월 첫 송치자를 받은 뒤 1960년 말까지 3천 명 안팎이 보내졌다. 1958년 최고 3,074명이 수용되었다. 염습지와 사막에 둘러싸인 땅은 수용자를 먹일 수 없었는데, 관리와 상급 기관은 「우파는 곧 반동」이라는 논리로 식량을 충분히 대지 않았고, 1960년 하반기부터 아사자가 나왔다.

1960년 9월 간쑤성 당위원회의 하서회랑 개간 계획에 따라 1,900여 명이 아무 시설도 없는 가오타이현 밍수이탄의 새 농장으로 옮겨졌다. 사람들은 나뭇잎·나무껍질·벌레·쥐, 배설물과 죽은 동료의 살까지 먹었고, 시신은 묻을 힘이 없어 모래 언덕에 버려졌다. 11월 내무부장 첸잉이 사태를 발견해 중앙 검사단이 「인명 구조」에 나섰으나, 밍수이탄에서 살아 돌아온 사람은 200여 명이었고 생존자는 모두 500여 명이었다. 1961년 10월 농장이 폐쇄되자 간쑤 당국은 의사를 시켜 사망자마다 굶주림 아닌 병사의 병력서를 만들었다.

수용자 수는 자료마다 다르다. 간쑤성의 1964년 문건은 송치자를 2,369명(우파 887명 등)으로 세고, 농장의 1958년 보고는 3,074명, 생존자 증언과 관리 일지는 3천 명이 넘었다고 하며, 작가 자오쉬는 3,500명가량으로 추산한다. 양셴후이의 소설집 『자볜거우와의 작별』과 왕빙의 영화 「도랑」(2010)이 이 일을 알렸다. 2013년 유족들이 세운 기념비는 곧 지방 당국에 의해 부서졌다.

관련 역사 사건

출처

  1. 위키백과 (영문)
  2. zh.wikipedia.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