쿨라크 명부 (헝가리)
Kulak list (Hungary)
라코시 체제의 헝가리가 '쿨라크'(부농)로 분류한 농가를 올린 행정 명부. 1952년 법령은 대체로 경작지 25홀드(약 14헥타르) 이상이거나 일정 지가 수익 이상인 농가를 쿨라크로 규정했다. 명부에 오른 농가는 가중된 의무 공출·세금·벌금과 재판, 감시를 받아 사실상 사회에서 배제되었다. 1953년 6월 크렘린 회담에서 너지 임레가 폐지를 요구해 소련 지도부가 받아들였고, 6월 노동인민당 결의로 폐지되었다.
상세
누가 쿨라크였나
헝가리 공산당은 1948년부터 소련을 본떠 농업 집단화를 목표로 삼으면서 반(反)쿨라크 선전과 투쟁을 시작했다. 이때부터 예전의 '큰 농부' 같은 말 대신 부정적 뜻이 뚜렷한 '쿨라크'라는 말이 퍼졌다. 대체로 25홀드가 넘는 땅을 가진 농민이 쿨라크로 여겨졌고, 1952년 제2호 법률명령 제15조가 기준을 정리했다. 실제 경작지나 소유지가 25홀드 이상이거나 지가 수익이 기준(350 또는 850 금관) 이상인 경우, 탈곡기·방앗간 같은 기계 설비를 가지거나 상업·요식업을 겸한 경우, 1949년 농업발전 부담금 납부 대상이었던 경우가 모두 포함되었다. 그러나 당의 눈 밖에 난 가난한 농민도 쉽게 쿨라크 딱지를 받았다.
명부에 오른다는 것
명부에 오른 농가는 지키기 어려운 의무 공출과 규정으로 끊임없이 시달렸고, 재판과 경찰·국가보안기관(ÁVH)의 괴롭힘, 강제수용, 재산 몰수를 겪었다. 1953년 6월 크렘린에서 너지 임레는 「쿨라크 명부에 오른 사람은 누구든 사회에서 배제된다」고 말했다.
폐지
6월 16일 회담 둘째 날, 베리야는 쿨라크 명부 폐지에 대해서만은 신중하라고 했다. 너지는 「쿨라크 명부는 쿨라크에 대한 불법 행위의 근거」라며 폐지를 고수했고, 베리야가 이를 받아들였다. 이틀간의 회담에서 헝가리 쪽 제안이 소련 쪽에 받아들여진 유일한 순간이었다. 6월 27~28일 노동인민당 중앙지도부 결의는 농업 과제 가운데 첫째로 쿨라크 명부 폐지를 꼽았고, 7월 4일 너지의 정부 강령은 쿨라크 명부를 사법 박해·공출·징세와 함께 국민의 정의감을 해친 괴롭힘으로 열거했다.
기억
헝가리 의회는 2012년 3월 26일, 쿨라크 박해로 몰락한 농민을 기리는 날로 6월 29일(성 베드로·바울 축일, 전통적인 수확 시작일)을 지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