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tviešu strēlnieki / Латышские стрелки · 1915.07.19 (1915년 러시아 제국군 부대로 창설되어 1917년 볼셰비키 쪽으로 돌아섰고 내전기 붉은 군대의 정예로 싸웠다.)

라트비아 소총병

Latvian Riflemen

1915년 독일군의 진격에 맞서 러시아 제국군 안에 세워진 라트비아인 부대. 1917년 볼셰비키 쪽으로 돌아서 소비에트 정권의 가장 믿을 만한 무력이 되었다. 1918년 7월 모스크바의 좌파 사회혁명당 봉기와 야로슬라블 봉기 진압에 나섰고, 내전 내내 붉은 군대의 정예로 싸웠다.

상세

왜 라트비아인만의 부대가 생겼나?

1915년 독일군이 라트비아로 밀려오자 두마 의원 야니스 골드마니스 등이 라트비아인 대대를 세우자고 요청했고, 차르는 7월 19일 이를 승인했다. 라트비아인은 러시아화 정책에 불만이 있었지만 독일에 대한 반감이 더 컸고, 지역을 잘 알았다. 처음에는 자원병으로, 1916년부터는 징집으로 채워졌으며 모두 약 4만 명이 복무했다.

왜 볼셰비키 편에 섰나?

1916년 12월과 1917년 1월의 크리스마스 전투에서 라트비아 소총병은 독일군 전선을 뚫었으나 공격이 이어지지 않아 헛수고가 되었고, 전체 병력의 3분의 1쯤인 9천 명의 사상자를 냈다. 장군들과 차르에 대한 분노가 커졌고, 전쟁 종식을 내건 볼셰비키에 대한 지지로 이어졌다. 1917년 5월부터 연대들은 대거 볼셰비키로 돌아섰다.

소비에트 정권에서 어떤 역할을 했나?

1918년 4월 13일 연대들은 라트비아 소총병 소비에트 사단으로 묶여 붉은 군대의 첫 정규 사단이 되었다. 크렘린과 혁명 지도부를 지키는 일도 맡았다. 1918년 7월 6~7일 다른 수비대가 움직이지 않을 때 이오아킴 바체티스가 이들을 이끌고 포격으로 좌파 사회혁명당 봉기를 끝냈고, 이어 야로슬라블 봉기 진압에 나섰다. 뒤에는 체코슬로바키아 군단, 데니킨, 유데니치, 브란겔과 싸웠다. 1919년 초에는 소비에트 라트비아 수립에 쓰였으나 라트비아 독립 전쟁에서 패했다.

관련 인물

관련 역사 사건

출처

  1. 위키백과 (영문)
  2. 위키백과 (러시아어)
  3. 위키백과 (러시아어)
  4. 위키백과 (영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