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세계
Lifeworld
과학 이론 이전에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며 살아가는 일상 경험의 세계. 에드문트 후설이 1936년 『유럽 학문의 위기와 선험적 현상학』에서 중심 개념으로 삼았다. 그는 근대 과학이 모든 과학의 바탕인 생활세계를 잊고 수학으로 다시 그린 자연을 참된 실재로 착각한 데서 ‘학문의 위기’가 생겼다고 진단했다. 알프레트 슈츠가 이 개념을 사회학에 들여왔다. 위르겐 하버마스는 생활세계를 언어적 의사소통이 이루어지는 문화·사회·인격의 배경으로 다시 정의하고, 돈과 권력으로 움직이는 ‘체계’가 이를 잠식하는 ‘생활세계의 식민지화’를 비판했다.
상세
생활세계란 무엇인가?
아침에 우리는 “해가 뜬다”고 말한다. 천문학으로 보면 해가 뜨는 것이 아니라 지구가 돈다. 그래도 우리가 실제로 사는 세계에서 해는 동쪽에서 떠오르고, 땅은 단단히 멈춰 있다. 컵은 물을 마시는 물건이고, 숟가락은 밥을 뜨는 물건이며, 의자는 앉는 물건이다. 우리는 이런 것들을 따로 따져 묻지 않고 그냥 믿고 쓴다. 이렇게 과학 이론 이전에 자명하게 주어져 있고 몸으로 겪는 세계를 생활세계(Lebenswelt)라고 부른다.
생활세계는 나 혼자만의 세계가 아니다. 그것은 역사와 문화가 빚어낸 세계이기도 하다. 그 안에는 오랜 전통과 겹겹이 쌓인 의미가 있고, 우리는 몸을 가진 존재로서 그 속에 뿌리내리고 사회화된다. 한국어 사용자에게 설날 떡국이 ‘당연한’ 것처럼, 무엇이 자명한지는 생활세계마다 다르다.
이 말은 어디서 왔나?
‘생활세계’라는 말은 19세기 중반에 처음 나타났다. 하인리히 하이네가 1836년 『피렌체의 밤』에서 이미 썼다. 그 뒤 생물학과 식물학에서 쓰이다가, 빌헬름 딜타이와 게오르크 지멜 같은 ‘삶의 철학’을 거쳐 철학의 개념이 되었다. 마르틴 하이데거도 초기 강의에서 이 말을 썼다. 그러나 1927년 『존재와 시간』에서는 이 말 대신 ‘세계-내-존재’를 ‘현존재의 근본 구조’로 내세웠다. 이 개념을 철학의 한복판에 올려놓은 사람은 에드문트 후설이다.
후설은 왜 ‘학문의 위기’를 말했나?
후설은 1935년 프라하와 빈에서 강연을 했다. 이 강연을 발전시킨 것이 1936년 베오그라드에서 일부가 발표된 『유럽 학문의 위기와 선험적 현상학』이다. 이 책은 미완성으로 남았고, 완성된 판본은 그가 죽은 뒤인 1954년에야 나왔다. 그러나 오늘날 후설의 가장 영향력 있는 저작이자 그의 사상의 정점으로 꼽힌다.
후설은 이렇게 진단했다. 19세기 후반 실증 과학은 경제적·기술적 번영을 가져다주며 사람들의 눈을 멀게 했다. 하지만 세기말에 이르자 과학이 실제 삶에서 등을 돌렸다는 비판이 커졌다. 후설은 그 분위기를 이렇게 옮긴다.
“우리의 삶의 곤경 속에서 — 이렇게들 말한다 — 이 학문은 우리에게 할 말이 없다. 이 학문은 불행한 우리 시대에 운명적인 격변에 내맡겨진 인간에게 가장 절박한 바로 그 물음들을 원칙적으로 배제한다. 이 인간 현존재 전체의 의미 또는 무의미에 대한 물음을.”
위기의 원인을 후설은 이렇게 보았다. 모든 과학이 생활세계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사실을 잊었다는 것이다. 생활세계는 일상의 모든 행동과 생각, 그리고 모든 과학 이론과 철학의 자명하고 묻지 않은 토대다. 과학이 아무리 정교한 논증을 펼쳐도 생활세계에서 물려받은 많은 의미와 타당성을 전제하지 않을 수 없다.
갈릴레이는 무엇을 잊었나?
후설은 이 망각의 출발점을 갈릴레오 갈릴레이에게서 찾는다. 갈릴레이의 위대한 업적은 ‘자연을 수학적으로 다시 해석한 것’이었다. 수학은 자연의 내부를 여는 열쇠가 되었다. 그러나 곧 측정하고 수량화하는 이 방법이 실재 자체로 둔갑했다. 존재한다는 것은 곧 측정할 수 있다는 것이 되었다. 후설의 표현으로 사람들은 “실제로는 방법인 것을 참된 존재로 여겼다.”
일상의 예로 바꾸면 이렇다. 체온계가 36.5도를 가리키면 우리는 ‘정상’이라고 안심한다. 그런데 몸이 으슬으슬하고 아픈 느낌은 ‘주관적인 착각’으로 밀려나기 쉽다. 후설이 보기에 숫자는 생활세계의 경험을 정리하려고 만든 방법이다. 그 방법이 경험보다 더 ‘참된’ 것으로 올라서면 거꾸로 된 것이다. 정량화할 수 없는 것을 모두 불신하자, 지각되는 세계 자체가 물리적 세계를 잘못 비춘 주관적 환영으로 취급되었다. 그 결과 과학은 인간의 경험에서 소외되었고, 가치와 의미, 실존에 관한 물음에 답하지 못하게 되었다. 이것이 후설이 말한 근대 과학의 위기다.
후설의 생활세계는 왜 이중적인가?
후설은 생활세계라는 말을 두 가지 뜻으로 썼다. 하나는 시대와 문화를 넘어 인간이 세계와 관계 맺는 보편적 토대, 곧 ‘자명한 것들의 우주’다. 다른 하나는 구체적인 역사 속에서 바뀌는 실천적이고 직관적인 생활세계다. 그래서 생활세계는 보편적인 것과 구체적인 것, 비역사적인 것과 역사적으로 변하는 것 사이에 걸쳐 있다. 이 이중성 때문에 생활세계는 과학을 비판하는 기준이 되는 동시에, 그 자체가 계몽해야 할 대상이 되기도 한다.
사회학은 이 개념을 어떻게 받아들였나?
사회학자 알프레트 슈츠는 후설의 생활세계 개념을 사회학의 분석 도구로 들여왔다. 슈츠에게 생활세계는 ‘누구나’의 세계인 일상이다. 모든 사람이 그 안에서 살고 생각하고 행동하며 서로 의사소통하는 ‘탁월한 현실’이다. 일상의 세계는 처음부터 여러 사람이 함께 나누는 문화적 세계다. 그 안의 사실은 언제나 이미 해석된 사실이다. 슈츠는 이 일상의 이해 방식을 ‘상식’, 곧 ‘자연적 태도’ 속의 삶이라 불렀다.
후설의 제자 얀 파토치카도 1936년 『철학적 문제로서의 자연적 세계』에서 같은 주제를 다루었다. 이 책은 체코어로 된 첫 체계적 현상학 연구였다.
하버마스는 생활세계를 어떻게 다시 썼나?
위르겐 하버마스는 후설의 생활세계 개념을 이어받으면서도 고쳐 썼다. 그는 현상학의 생활세계가 ‘자아 중심적 의식’에 매여 있어 고립된 주체에서 출발하는 철학의 틀을 벗어나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하버마스는 생활세계를 의사소통 이론으로 해석해, 독백하는 주체성에서 대화하는 상호주관성으로 넘어가는 패러다임 전환을 드러내려 했다.
하버마스에 따르면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이 무언가에 대해 서로 이해하려 할 때, 생활세계는 두 사람의 ‘등 뒤’에 있다. 그것은 직관적으로 알고 있고 문제 삼지 않으며 쪼갤 수 없는 배경이다. 대화하는 동안 우리는 그 배경을 정면으로 주제 삼을 수 없다. 둘이 이번 주말 등산 계획을 의논할 때, 두 사람은 ‘주말에는 쉰다’, ‘약속은 지킨다’ 같은 수많은 전제를 깔고 있다. 그런 전제는 누가 문제 삼기 전까지는 드러나지 않는다.
하버마스는 생활세계에 세 측면이 있다고 본다. 첫째는 ‘문화’다. 사람들이 서로 이해할 때 해석을 끌어오는 지식의 창고다. 둘째는 ‘사회’다. 사람들이 집단에 속하는 방식을 정하고 연대를 지키는 정당한 질서다. 셋째는 ‘인격’이다. 한 사람이 말하고 행동할 수 있게 해 주는 능력이다. 의사소통적 행위는 이 셋을 다시 만들어 낸다. 대화를 통해 문화적 지식이 이어지고 새로워지며, 사회적 통합과 연대가 생기고, 자라나는 세대가 인격을 형성한다.
체계는 생활세계를 어떻게 잠식하나?
하버마스는 1981년 『의사소통행위이론』에서 이 생활세계를 ‘체계’와 맞세웠다. 체계는 시장과 국가 행정처럼 돈과 권력으로 움직이는 영역이다. 근대화가 진행되면서 체계가 생활세계에서 떨어져 나와 독자적인 논리를 갖게 되었다. 그러자 돈과 권력이 공동의 가치와 규범에서 분리된 행동 논리를 사람들에게 강요하게 되었다. 체계가 생활세계로 넘어오는 것을 하버마스는 ‘생활세계의 식민지화’라고 불렀다. 자세한 내용은 의사소통 행위 이론 항목에서 다룬다.
마르크스주의 쪽에서는 이 구도를 비판했다. 자본주의를 넘어서려던 마르크스의 목표가 하버마스에게서는 생활세계를 체계의 침입에서 ‘지키는’ 일로 줄어든다는 것이다. 그러면 시장과 행정의 강제를 사실상 받아들이게 될 위험이 있다는 지적이다.
오늘날에는 어떻게 쓰이나?
생활세계는 지금도 사회학, 교육학, 사회복지학에서 널리 쓰인다. 위르겐 미텔슈트라스 같은 구성주의 철학자들은 이를 모든 엄밀한 과학에 앞서는 ‘생활세계적 선험성’으로 다시 해석했다. 독일 사회교육학자 한스 티르시는 ‘생활세계 지향’이라는 접근을 세웠다. 그는 카렐 코시크의 개념을 빌려, 사람들이 겪는 일상의 생활세계를 겉모습만으로는 실재가 드러나지 않는 ‘사이비 구체성’의 세계로 보았다. 그러면서도 바로 그 일상 안에 주체가 강제에서 벗어날 가능성이 있다고 보았다.